[광화문에서/이진한]원격진료의 오해와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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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원격진료 시행을 두고 의사나 정치인들이 반대한 적은 없다. 대면진료가 원칙이고 원격진료는 환자를 위한 보조수단이기 때문이다.” 5월 일본 후생노동성을 방문했을 때 원격진료 총책임자인 간다 유지 의정(醫政)국장이 한 말이다. 일본은 지난해 8월 원격진료를 전면 시행했다.

의외였다. 국내에선 시민단체와 야당이 원격진료가 대기업과 연관된 의료영리화의 전 단계라며, 또 개업의는 원격진료가 도입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려 의원이 망할 것이고 환자의 안전성도 확보되지 않았다며 각각 반대하고 있다. 한국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던 것처럼 의료환경이 한국과 비슷한 일본에서도 원격진료에 반대가 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간다 국장은 “의사가 (원격진료 때문에) 집단시위를 한다고요?”라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일본엔 우리와 다른 진료행위 두 가지가 있다. 의사가 환자의 집에 찾아가서 진료하는 ‘왕진제도’(수가 약 25만 원)와 의사가 스마트폰으로 상담과 진료를 하는 ‘전화재진제도’(수가 약 7870원)가 이미 활성화돼 있다. 그러니 일본 의료계는 원격진료 시행에 큰 관심이 없다.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충남 서산시 서산효담요양원을 찾아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참관한 뒤 또다시 원격진료 시행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박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원격진료 시범사업 대상 요양원을 올해 안으로 기존 6곳에서 680곳으로 늘린다고 한다. 이러다가 원격진료는 시범사업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원격진료가 대형병원으로 환자를 몰아갈 것이란 오해는 이쯤에서 풀렸으면 한다. 의료법상 원격진료를 하는 곳은 원칙적으로 병원이 아닌 ‘의원’이기 때문이다. 또 원격의료 대상 환자도 이미 대면진료로 초진을 본 만성질환자가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원격진료라기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원격 모니터링’에 가깝다. 병원에 자주 못 오는 환자를 의사가 수시로 살펴보는 것이니 손해 볼 게 없다. 더구나 다음 달부터는 고혈압 당뇨병 등 경증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전화상담(환자당 매월 2회로 제한) 시범사업이 실시된다. 환자를 더 자주, 더 잘 돌보는 방법이 아닌가. 정부가 처음부터 원격진료가 아닌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원격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나섰으면 찬성했을 시민단체나 의사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또 원격진료가 의료영리화의 전 단계인지도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원격진료 추진을 오랫동안 담당했던 한 공무원은 18대 국회에서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의료법인 간 합병 허용과 함께 발표돼 의료민영화로 오해를 받았다고 전했다. 19대 국회 때는 병원이 영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든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과 함께 묶여 실질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의료민영화의 상징이 돼 버렸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다행인지 이번엔 원격진료만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6월 국회에 제출됐다.

더 이상의 해묵은 논쟁에서 벗어나 환자 입장에서 환자 편의를 위한 원격진료로 건설적인 논의가 진행됐으면 한다. 국내에선 트라우마가 많은 원격진료라는 용어 대신 ‘비대면 진료’ 또는 ‘스마트 진료’로 바꾸자는 전문가도 있다. 많은 의사들이 원격진료로 인한 오진의 책임성이 불확실하며, 또 당장은 아니지만 결국엔 종합병원으로 원격진료가 확대될까봐 선뜻 나서길 꺼리고 있다. 하지만 경증 만성질환자들이 병원에 가서 기다리고 진료받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또 보조진료 개념으로 원격진료를 활용할 의사들을 위해서라도 길은 터 줘야 한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원격진료#의료영리화#의료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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