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장수하는 국산 신약을 보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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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지난주에 정부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약가(건강보험에서 인정해 주는 약의 가격) 제도 개편이 핵심이었다.

지금까지는 국내 제약업체가 신약을 개발하면 같은 효능의 다른 제품과 비슷한 수준에서 약가가 책정됐다. 대체로 선진국 약가의 40∼50% 수준이다. 제약업체들은 이 가격을 기준으로 수출 협상을 벌였다. 국내에서 500원짜리를 5000원에 수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국내의 낮은 약가가 수출에 걸림돌이 됐다. 제약업계가 신약 약가 인상을 줄기차게 요구한 이유다.

이번에 정부가 국산 신약 약가를 우대하기로 하면서 제약업체의 숙원이 다소 풀렸다. 국산 신약이 개발되면 대체할 수 있는 약의 최고가에서 10%를 얹어준다. 대체약이 없다면 미국 독일 등 제약 선진국 7개국의 유사 약품 가격에 맞춰 약가를 정한다. 선진국 약가는 국내보다 높기 때문에 국내 신약 약가가 인상되는 효과가 난다.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약가도 오리지널 제품의 70%에서 80%로 오른다. 이 개편안은 10월부터 시행된다.

한국제약협회는 “국산 신약의 개발 의욕을 북돋는 정책적 격려가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제약업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급한 불을 껐다”거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답변이 많았다. “신약 개발 붐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다소 흥분한 사람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환영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제약업체 임원 A 씨는 “약가가 인상되면 건강보험 재정의 불안정성은 커진다. 그러면 또다시 약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정부와 제약업계의 소통을 일상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선 안 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제약업체 임원 B 씨는 “이제 공은 업계로 넘어왔다. 지금까지 나온 국산 신약의 성과가 얼마나 되나. 제약업체도 더 치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산 신약 1호는 1999년 7월 15일 시판허가를 받은 위암 치료제 ‘선플라’다. 안타깝게도 선플라는 10여 년 만에 생산이 중단됐다. 시장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위암은 한국에선 발생률이 아주 높은 암이지만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다. 글로벌 시장이 작다는 뜻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농구균 예방 백신인 CJ헬스케어(당시 CJ제일제당)의 슈도박신은 희귀의약품으로 인정받아 임상 3상에 돌입하기 전에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임상시험에 응할 환자를 구하지 못해 스스로 신약을 철수했다. 세계 최초의 방사성의약품 간암 항암제로 허가를 받은 동화약품의 밀리칸도 비슷한 이유로 시판 허가를 반납했다.

이 밖에 많은 초기 국산 신약이 모습을 감췄거나 살아남았다 해도 매출은 부진하다. B 씨는 “당시에는 시장성을 치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신약 개발이 기업의 역량을 과시하는 이벤트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B 씨는 “지금은 국내 제약기업들의 기술력도 선진국 못지않다. 이제 사활을 걸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10여 년 전 독일에 있는 글로벌 제약사 바이엘의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개발(R&D) 책임자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신약 개발에 몰두한다. 신약 후보 중 0.7%만이 최종 제품으로 개발되며 평균 13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1897년 개발한 아스피린은 100년 이상 장수한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약. 우리라고 못 만들까. 이제 제약업계가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다. 대한민국 상표를 단 장수(長壽) 신약을 기대한다.

김상훈 소비자경제부 차장 corekim@donga.com
#약 가격 제도 개편#국내 제약·바이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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