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좋아진 무용, 이젠 나의 모든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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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발레단 美 ABT 수석 무용수 서희

《 “제가 e메일을 보고 확인해 볼게요. 하도 많아서….”

그에게 앞으로의 공연 일정을 물어보니 e메일부터 확인해 본다. e메일의 일정을 일일이 손으로 짚어 가던 그는 “33개네요”라며 싱긋 웃는다. 세계 3대 발레단 가운데 하나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프린시펄)인 서희(29)가 올 9월부터 내년 7월까지 출연할 공연들. 그만큼 서희는 ABT에서 주목받는 수석무용수다. 그는 ABT 봄 시즌 프로그램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백조의 호수’ 등 8개 중 7개 작품에 주역으로 섰다. 7월 하순 입국해 대관령국제음악제 공연을 마친 뒤 휴가를 즐기고 있는 그를 6일 서울 유니버설발레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


ABT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이 부모 소개로 정혼자인 파리스 백작을 처음 만나는 장면. 서희는 예전엔 줄리엣의 복잡한 감정을 모두 춤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젠 동작을 줄여 시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John Grigaitis 제공
ABT의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이 부모 소개로 정혼자인 파리스 백작을 처음 만나는 장면. 서희는 예전엔 줄리엣의 복잡한 감정을 모두 춤으로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젠 동작을 줄여 시처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John Grigaitis 제공
―대관령국제음악제 공연은 어땠나요.

“음악제 예술감독인 정명화 선생님이 3년 전부터 음악제에 한번 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씀했는데 그동안 바빠서 못 오다가 올해 처음 왔다. 주최 측이 라벨의 춤곡 ‘볼레로’를 안무곡으로 정해 줘서 그에 맞춰 안무가와 춤을 짰다. 결과보다 과정이 재미있었다.”

―ABT의 줄리 켄트 등 수석무용수들이 줄줄이 은퇴해 서희의 비중이 커졌다고 들었다.

“20여 년간 ABT에 있었던 켄트는 가장 존경하는 무용수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끝까지 정상급 기량을 잃지 않았고 모든 행동에서 후배의 귀감이 됐다. 나는 전성기로 가는 관문에 서 있다고 본다. 내가 지금보다 더 잘할 때가 전성기가 됐으면 한다.”

―서희 발레의 장점은 뭔가.

“음악과의 호흡이다. 음과 음에 맞게 춤을 추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음과 음 사이에 동작을 잘 연결해 춤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게 다른 무용수보다 잘 표현되는 것 같다.”

―발레는 서희에게 무엇인가.


“어릴 때는 ‘잘한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말에 무용을 했다. 내가 평생 무용을 하고 살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용이 좋아졌다. 무용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지금도 발레가 계속 좋아지고 있고 무용 외엔 다른 취미도 없다. 뉴욕에 산 지 10년 됐는데 어디가 명소인지 잘 모른다.”

6일 서울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서희. 인터뷰를 마치고 모교인 선화예중 학생들에게 춤 시범을 보여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6일 서울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서희. 인터뷰를 마치고 모교인 선화예중 학생들에게 춤 시범을 보여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무용수는 몸이 중요한데….

“무용수로서 좋은 몸이지만 완벽하진 않다. 발레 동작을 제대로 소화할 근육과 지구력을 키우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아침에 1시간 동안 근육운동을 한다. 90파운드(약 40kg) 역기를 들고 스쿼트를 하기도 한다. 하루에 7시간씩 발레를 하니까 근육운동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지만 이렇게 공들여 만들었기에 애정을 느낀다.”

―예년과 달리 한국에 한 달 가까이 머물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서른 살이 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발레 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다. 근데 내년이면 벌써 서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펀딩을 받아 내년에 장학재단을 열려고 한다. 집에선 왜 벌써 그런 일에 신경 쓰느냐고 은근히 반대하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못 할 것 같다.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신경 쓰이고 법적 문제도 적지 않지만 마음은 매우 기쁘다. 그 덕에 한국에 오래 머물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친 뒤 유학을 가 외국에서만 생활했는데 한국어가 전혀 서툴지 않고 말도 조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스피치 선생에게 말하는 요령을 배우고 있고 한국 TV프로그램을 보며 한국어 실력을 유지했다. 요즘은 발레단이 쉬는 일요일 오전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MBC ‘무한도전’의 열혈 팬이고 박명수 팬이다. 섭외가 오면? 당연히 출연하겠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abt#수석 무용수#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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