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학원 ‘연기’에 가슴치는 엄마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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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스타로 키워줄게요”… 기획사 사칭 돈벌이 혈안

인천에 사는 주부 박윤정(가명·42) 씨는 요즘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1주일에 두 번씩 서울 강남구와 구로구의 연기학원을 찾는다. 아들은 학원 두 곳에서 수업을 받는다. 수업 내용은 TV 광고 속 아역배우 연기 따라하기, 매운 것을 먹었다고 상상하며 표정 지어 보기 등이 전부다.

박 씨 아들이 학원에 다니게 된 건 한 업체에서 주최한 어린이모델 선발대회에 응시하면서부터다. 박 씨는 “아들이 끼가 많고 잘생겼다고 생각해 응시 게시판에 사진을 올렸더니 5, 6곳에서 전화가 왔다”며 “생각해보겠다고 말해도 계속 전화가 와서 결국 학원에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박 씨처럼 자녀를 연기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이들은 어린이모델을 찾는다는 웹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녀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렸다가 연기학원과 연결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학원 관계자들은 부모가 남긴 전화번호나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자신이 아역배우 전문 에이전시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자녀를 연예인으로 키워줄 테니 우리에게 맡겨 달라. 일단 카메라 테스트부터 받아 보자”고 권유한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던 부모들도 여러 번 제안을 받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6세와 8세 자녀를 둔 주부 최모 씨(38)도 “에이전시의 전화를 계속 받다 보니 우리 아이도 유승호나 김유정 같은 스타로 클 수 있는데 내가 그 싹을 일찌감치 잘라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맘스홀릭 베이비’처럼 주부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카페 등에는 이런 고민을 담은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댓글 역시 “우리도 어제(또는 오늘) 전화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에이전시라고 밝히는 업체 대다수는 연기학원이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에 따르면 회원사 248곳 중 아역 전문 에이전시는 2곳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연기학원들은 연기자 데뷔보다 수강료, 프로필 사진 촬영비 등을 받아 챙기는 게 주목적인 경우가 많다. 박 씨 역시 두 곳의 학원에서 자녀가 각각 주 1회 90분과 2시간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총 325만 원을 결제했다. 한 곳은 등록비와 3개월 수강료가 70만 원이고 다른 곳은 등록비와 4개월 수강료를 합해 255만 원이었다.

환불도 쉽지 않다. 박 씨는 “한 곳에 등록한 지 이틀 만에 조건이 나아 보이는 다른 곳에서 연락을 받아 환불을 요청했지만 ‘환불 불가’라는 계약서 조항을 들이밀어 어쩔 수 없이 두 곳에 다 다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강기간을 채워도 실제 연예인으로 데뷔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3년 전 생후 18개월인 아들을 한 에이전시에 보냈던 주부 이모 씨(36)는 당시 계약금 80만 원을 냈지만 2년간 오디션을 본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이 씨는 “오디션도 아이 얼굴 한 번 확인하고는 끝이었다. 돈을 받았으니 형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연기학원이나 에이전시들은 “손익 관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해명한다. 한 아역 전문 에이전시 임원은 “현재 아동 수강생이 200명이고 1년에 500∼600명이 등록한다”며 “성인과 달리 아역배우는 출연료가 몇만 원에 그치고 실제 스타가 될지도 미지수이니 수강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등록 권유 전화를 받으면 우선 연매협 회원사인지 확인하고 학원일 경우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관할 교육청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 피해를 막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아역스타#사기#연기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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