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나라 망칠 법’의 수술 작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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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나라 망칠 법”이라고 했다. 이 법의 정확한 명칭은 2012년 개정 국회법이다. 하지만 이 법에는 ‘국회후진화법’ ‘국회식물화법’ 등과 같은 별칭이 붙었을 만큼 악명이 높다. 주 의원은 4개월 전 당내 국회법 정상화 TF 위원장 자격으로 헌법재판소에 이 법안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봇물 터진 선진화법 개정론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과정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법을 무기로 집권여당을 계속 쥐고 흔들었다. 위헌 소지에 아랑곳 않고 시행령의 수정을 정부에 강제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고치는 무리한 합의안이 나온 것도 국회선진화법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무책임한 야당과 무기력한 여당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걱정스럽다.

다수당인 새누리당에서는 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이 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가 합의했을 때로 제한했다. 사실상 직권상정을 불가능하게 만든 뒤 법안 신속처리라는 보완장치를 뒀지만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요구가 있어야 가능하다.

문제는 역대 국회에서 제1당이 5분의 3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전례가 없다. 이 법을 만들 때부터 “국회가 마비 상황에 빠질 수 있다”며 식물국회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하지만 연계투쟁을 일삼는 ‘야당 독재’의 탄생은 더 심각한 문제다. 신속처리 요건을 과반수로 낮추는 방향으로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야당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국회선진화법 개정은 요원하다. 새누리당이 법을 고치더라도 내년 총선 뒤 20대 국회부터 적용하자는 미끼를 던진 이유다.

새정치연합은 응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2007년 이후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한 터에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헌법재판소 말고는 국회선진화법 문제를 해결할 기관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새누리당이 답답하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옛 통합진보당 위헌 해산 결정이나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 때 압도적 다수(8 대 1)의 헌재 재판관들은 보수적 견해를 표출했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결정은 국회의 운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보와 보수의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만큼 다수의 재판관이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헌재 7월 중 신속 결정해야

과반수 표결은 엄밀하게 보면 헌법상의 원칙으로 보기 힘들다.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표결을 요구한다. 심의표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려면 날치기 통과가 전제되면 좋은데 여야가 심의표결권을 이렇게 행사하겠다고 합의해 통과했다. 그런 만큼 국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3권 분립 정신에도 부합한다.

헌재가 180일 내에 사건을 처리하도록 한 규정을 지켜야 한다. 골치 아픈 사건이라고 미루면 정치권도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무한정 시간을 끌 것이다. 그러면 ‘나라 망칠 법’을 수술하는 작업만 지체될 뿐이다. 헌재의 신속한 결정이 여야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촉진할 수 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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