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특명전권대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Ver 2.0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재임 시절 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신참 대사들을 집무실로 불러 ‘환송 담소’를 나누곤 했다. 그때마다 책상 옆 지구본 앞으로 이동해 대사들에게 “‘당신의 나라(your country)’가 어디인지 가리켜보라”고 했다. 대부분은 부임지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면 슐츠는 대사의 손가락을 살며시 붙잡아 미국을 가리키게 만들었다. 외교관은 자국을 대표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만드는 세심한 충고였던 셈이다.

지난해로 33년간의 외교관 근무를 마친 윌리엄 번스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한 외교안보 전문지에 소개한 얘기다. 다음 부임지를 두고 매년 두 차례 인사 홍역을 치르는 한국 외교부의 현실을 볼 때 곱씹어볼 대목이 많다.

‘특명전권대사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직전의 칼럼을 두고 의견을 주신 분들이 많았다. 대사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고, 시간과의 싸움이 심화되는 건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특명전권대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렵지만 그 출발점은 슐츠의 충고처럼 외교관 스스로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명심하는 일이어야 할 것 같다. 일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인사권자와의 관계, 자녀 교육 목적 등의 이유로 부임지가 정해지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장관만 쳐다보다가 인사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나라와 국민을 제대로 대표할 수 없는 법이다.

몇 년 전부터 외국 대사 또는 외교 수장들과의 인터뷰 기회마다 말미에 이런 질문을 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의 전권대사 시절과 달리 정보의 홍수 시대에선 외교관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하나?’

2012년 10월 방한했던 빌뤼 쇤달 전 덴마크 외교장관은 “현대 외교관의 역할은 국가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자국과 주재국 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엮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스콧 와이트먼 전 주한 영국대사는 “외교관이 단순한 분석가이던 시절은 지났다. 영국의 장관이나 납세자들은 외교관이 협상가이자 (양국을 잇는) 전달자가 될 것을 기대한다”며 “외교관은 주재국 국민에게 신뢰받는 자국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만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변화된 환경을 적극 활용하라고 했다. 그는 “더 적은 시간을 들이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최신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며 “동시에 전통적인 형태의 외교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결합하는 창의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도 급속히 바뀌는 세상이다. 미국과 일본이 지난달 말 강력한 미일 신안보동맹을 내놓자마자 중국은 26일 미일 양국을 안보 위협세력으로 특정하며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대국들의 갈등이 불거지면 한국의 생존전략 마련은 점점 어려워진다. 다양한 갈등이 불거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고, 그 해법 마련은 더 힘들어진다. 여기에 핵개발에 매진하고 측근까지 숙청하는 북한 문제도 안고 있다. 그만큼 우리 주변 정세는 녹록지 않고 외교 과제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해외 외교 현장은 긴밀한 현지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외교부 본부는 이를 민첩하게 활용하는 유기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자원도 없고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만큼 스스로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외교관들의 사명감도 필요하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야자수만 따먹어도 행복한 처지가 아닌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은가.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