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자 큰울림… 때로는 위로, 때로는 희망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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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빌딩 ‘광화문 글판’ 25주년
7차례… 가장 자주 실린 고은의 작품 수
50여 명… 글귀에 인용된 국내외 작가
72편… 25년간 제작된 글판 수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설치된 ‘광화문 글판’. [1] 3월 1일 설치된 봄 편은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에서 구절을 따왔다. [2] 1999년 첫 글판은 경제성장을 위한 계몽적 메시지를 담았다. [3] 2010년 여름 편은 랩 가사에서 따온 구절에 그라피티 아트를 시도했다. [4] 2011년까지 선보인 글판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글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따온 글이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교보생명 제공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설치된 ‘광화문 글판’. [1] 3월 1일 설치된 봄 편은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에서 구절을 따왔다. [2] 1999년 첫 글판은 경제성장을 위한 계몽적 메시지를 담았다. [3] 2010년 여름 편은 랩 가사에서 따온 구절에 그라피티 아트를 시도했다. [4] 2011년까지 선보인 글판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글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따온 글이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교보생명 제공
‘꽃 피기 전 봄산처럼/꽃 핀 봄산처럼/누군가의 가슴 울렁여 보았으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 북적이는 인파 속에 이따금 멈춰 서는 발걸음들이 눈에 띈다. 교보생명 빌딩 외벽에 걸린 가로 20m, 세로 8m ‘광화문 글판’ 앞 풍경이다. 올해 3월 1일 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으로 겨울이 지났음을 알린 광화문 글판은 다음 달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광화문 글판이 햇수로 2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총 72차례, 30자 남짓한 짧은 글을 통해 큰 울림을 줬다. 문학을 좋아한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아이디어를 내 1991년 1월 처음 만들어진 글판의 문안은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이후에도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등 계몽적 성격의 직설적 메시지가 한동안 글판에 올랐다.

광화문 글판에 시심(詩心)이 녹아든 것은 1998년부터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신 창립자는 “홍보를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글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그대 하루하루의/낡은 반복으로부터.’(1998년 여름편) 고통스러운 일상에 절망하던 시민들은 고은 시인의 시 ‘낯선 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광화문 글판이 본격적으로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회자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동안 공자, 헤르만 헤세, 파블로 네루다, 서정주, 고은, 정호승 등 50여 명의 작품이 인용됐다. 그중 글판을 가장 많이 장식한 작가는 고은 시인으로 7차례 실렸다. 그는 광화문 글판을 위해 두 편의 시를 짓기도 했다. 2011년 광화문 글판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온라인 투표에서 그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글로 꼽힌 것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발췌한 2011년 여름편이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문구다.

1년에 4번 계절마다 바뀌는 글판의 내용은 시인, 소설가, 카피라이터,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와 시민 참여를 통해 선정된다. 지금까지 공선옥 소설가, 정호승 시인, 고 장영희 교수 등이 선정위원으로 활동했다.

불법 옥외광고물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서울시 옥외광고물 조례를 위반한 광고물로 분류돼 종로구에서 여러 차례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2007년부터 공익성을 인정받아 지금에 이르렀다. 글판 수도 늘어 서울 광화문 본사뿐 아니라 강남 교보빌딩, 부산, 광주, 대전, 천안, 제주의 교보빌딩 등 7곳에 같은 글판이 걸리고 있다.

교보생명은 27일 광화문 글판 25주년을 맞아 일반 시민과 대학생, 문학인 등 300여 명이 참여하는 공감 콘서트 ‘그곳에 광화문글판이 있었네’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연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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