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기업 살리는 ‘미다스의 손’…루이 갈루아 회장의 수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0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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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올랑드 정부가 친(親) 기업 정책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갈루아 보고서’이다. 보고서를 쓴 사람은 루이 갈루아(75)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현재 푸조 시트로앵(PSA) 이사회 회장이기도 하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머리카락이 없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수도승’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데 사무실도 작고 소박했다. 본래 재무관료 출신인 그는 기업 CEO로 변신해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철도회사(SNCF)를 10년간 맡아 흑자로 전환시켰고 항공·우주 전문기업 ‘에어버스’를 세계 항공기 시장 수주 1위 기업으로 키웠다. 3년간 적자에 허덕이며 공장폐쇄와 직원 8000명 감원을 겪었던 푸조·시트로앵(PSA)도 취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살려내는 비결이 뭔가”라고 묻자 그는 푸조에 처음 왔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중국 둥펑자동차와 프랑스 정부가 주식 지분을 인수하며 자금수혈을 했고 전임 CEO도 동분서주했지만 회사 정상화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맡았던 기업들은 대부분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이며 이미 훌륭한 역량을 갖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푸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직원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자신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 회사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것도 가격절감, 재고관리 개선 등에 따른 것이었지만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2012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투자자문각료회의 상임고문으로 임명된 후 증세정책을 포기하고 기업경쟁력 강화정책을 제안한 갈루아 보고서를 낸 배경을 물었다.

“프랑스 산업의 경쟁력에 대한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싶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산업 경쟁력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기업인에 대한 적대감이 컸던 프랑스에서 보고서를 계기로 ‘기업은 부(富)를 창조하는 곳’이라는 의견일치가 이뤄졌다. 정부가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고용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부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갈루아 보고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규제의 단순화’이다. 규제가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압력집단이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상원을 통과한 상점들의 일요일 영업제한 완화는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것이다. 이제 기업과 노동자들은 소비자들의 변화나 풍습의 변화에 발맞춰 변해가야 한다. 요즘 올랑드 정부가 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은 프랑스가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역량을 국내외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법을 바꾸지 않고도 생각만 유연하게 가지면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와 독일 합작사인 ‘에어버스’사를 맡았을 때 직원 해고나 감원이 독일이 프랑스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됐다. 사람들은 프랑스가 현 노동법이 있는 한 어떤 개혁도 못한다고들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현 노동법 아래서도 얼마든지 유연한 사고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 교수가 제안한 ‘단일계약’ 제도는 처음엔 단기 비정규직(CDD)으로 계약하다가 경력이 늘어나면서 장기 계약(CDI)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복잡한 노동법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주 35시간 노동제’ 폐기도 주장해왔는데 이유는?

“현재 프랑스 근로자들의 평균노동시간은 주 38시간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에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나는 2000년부터 줄곧 이 제도를 폐지해야한다고 했지만 프랑스에서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는 일종의 금기를 건드리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현 제도 아래에서도 35시간 이상 노동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성장률은 다소 올랐어도 실업률이나 투자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나는 비관적이지 않다. 디지털 기업들이 크고 있고 창업과 특허신청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산업 경쟁력은 1~2년 안에 효과가 나지 않는다. 독일도 슈뢰더 정부가 한 노동시장 개혁조치가 효과를 내기까지 10년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어떻든 정부의 구조개혁 덕분에 프랑스 기업들의 이윤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의 비관적 자세에서 벗어나 좀더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였던 가족수당과 주택수당 감소도 추진하고 있다.

”무작정 줄이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나은 중산층 지원은 줄이되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에 대한 예산은 늘리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가족수당 감소도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출산률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인구의 역동성을 유지해야 한다. 프랑스는 더 이상 낭만주의 문화국가가 아니다. 항공우주, 원자력, 바이오 테크, 디지털 강국으로 변신한 지 오래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스타트업(창업) 열풍도 뜨겁다. 프랑스의 신생 기업에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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