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듀폰 첫 아시아인 AP사장 지낸 김동수 고문이 말하는 ‘영속기업의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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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더는 스페셜리스트 아닌 제너럴리스트”

김동수 전 듀폰 아태지역 사장은 “글로벌 기업과 글로벌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미래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조직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100% 실패한다”며 변화를 향한 계속된 노력을 주문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김동수 전 듀폰 아태지역 사장은 “글로벌 기업과 글로벌 CEO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미래에 적합한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조직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100% 실패한다”며 변화를 향한 계속된 노력을 주문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의학과 과학, 그리고 기술의 빠른 발전은 인간의 평균 수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이처럼 급변하는 환경은 기업의 수명을 점점 더 짧게 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약 30년, 이들 기업이 70년간 존속할 확률은 18%에 불과하다. 코닥, 노키아 등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기업들조차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이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장수 기업이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듀폰이다. 1802년 미국의 작은 화학공장에서 시작한 듀폰의 역사는 213년이 넘는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나일론, 테플론, 스판덱스 등도 모두 듀폰의 작품이다.

이 글로벌 기업에서 빛나는 역할을 한 한국인이 있다. 듀폰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 불소 생산 담당 총책임자’ ‘세계 부직포 사업부 총책임자 겸 본사 부사장’ ‘아시아태평양(AP) 사장’ 등을 거친 김동수 페트로나스(Petronas) 사외이사 겸 고문(68)이 그 주인공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그를 만나 영속기업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변화하려는 의지와 리더 양성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한 우물을 파는 건 해롭다?

그는 화약기업에서 화학기업으로, 또 최근에는 바이오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는 듀폰에 대해 설명했다. 1998년 듀폰은 석유회사 코노코 매각 여부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석유 가격이 30달러 이상이냐, 이하냐에 따라서 매각을 결정해야 했다. 30달러 이상이면 안 파는 것이 이득이고, 30달러 이하면 파는 것이 이득이었다. 30곳의 에너지 전문가에게 석유 예상 가격을 물었다. 한 회사를 뺀 29곳으로부터 석유 가격이 30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란 답을 들었다. 듀폰은 그 의견을 신뢰했고 결국 회사를 팔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매각한 지 6개월 만에 석유 가격이 폭등했다. 매각 1년 후에는 150달러까지 올랐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예상은 틀렸고 듀폰은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놓친 셈이었다.

김 고문은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많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리스크를 경험한다. 모든 사업이 100% 성공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화하는 과정에서 위험요인으로 인한 실패 확률이 10∼30%라면 변화하지 않았을 때 실패 확률은 100%라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죽는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02년 일본에서 있었던 ‘듀폰 200년 기념모임’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당시 회장은 듀폰이 200년 동안 살아올 수 있었던 비밀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새로운 물건을 발명했다는 것, 즉 창조력이었다. 단순히 기술이나 소재 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시장으로 가져가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까지 창조력에 해당한다는 설명이었다. 두 번째는 변화하려는 의지였다. 김 고문은 “화약기업에서 시작한 듀폰은 지금 바이오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공했다고 멈추거나 자만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듀폰의 영속성을 도왔다”고 했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 영속성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세 번째는 안전, 환경, 윤리, 인간존중 등 듀폰의 네 가지 핵심 가치를 지키는 것이었다. 기본을 지키는 힘, 당연하고 지루해 보이지만 그것이 기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전문가와 리더는 다르다


기업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데 리더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듀폰은 오랜 기간 정성을 기울여 인재를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훌륭한 리더의 자격은 무엇인지 물었다. 김 고문은 리더라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일즈맨과 세일즈 매니저를 비교하며 다음의 사례를 들려줬다. 실적이 좋은 세일즈맨에게 직원 20명을 주면서 일을 하라고 했더니 예전의 방식대로만 일을 했다.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대신 넓어진 판매 영역을 커버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의외로 많다. 좋은 세일즈맨이냐, 좋은 세일즈 매니저냐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전문가를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히는 것이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고문 역시 생산, 연구, 제조, 인사관리, 안전, 해외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공장 짓는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것부터 시작해 공장장, 판매 책임자, 여러 공장을 책임지는 관리자, 부회장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김 고문의 역량을 알아본 듀폰에서 그를 리더 목록에 올려놓고 일부러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는 “이런 경험들이 모두 소중한 자산이 됐고, 리더가 됐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고 했다.

듀폰에서는 CEO나 회사 주역이 될 사람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몇 년이 아니라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을 투자한다. 고유의 핵심 인재 선발 제도를 운영하며 장기적으로 리더를 육성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2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30대 초반이 되면 직원들의 잠재력이 대략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30대부터 재목을 알아보고 그를 리더 목록에 올릴지 말지 판단한다. 인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듀폰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업 기회가 있더라도 기회를 잡아챌 수 있는 인재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본사 사업부장으로 발령받는 첫날 회장이 준 팻말 문구를 여전히 기억한다. 거기에는 ‘리더는 사람을 통해 성과를 창출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 고문은 “나쁜 사람에게 둘러싸인 좋은 리더는 세상에 없다”며 “주변을 좋은 사람으로 채워놓고 그들을 도와주면 리더는 별로 할 일이 없게 되는데, 이게 가장 이상적인 조직”이라고 했다.

그는 인재 양성과 관련한 국내 기업 시스템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국내 많은 기업들이 임원 교육에 주력하지만 듀폰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한 분야의 전문가로 키운 다음 단기간의 리더십 교육만 거치게 하는 것이다. 김 고문은 “리더의 잠재력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느냐’라는 이슈에서 발견되는데, 여기에서는 여러 경험이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기업이 전문가는 전문가로, 리더는 리더로 교육시키고 그에 맞는 보상 시스템을 갖추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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