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성장의 갈증 부르는, 돈은 과연 신성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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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정준형 옮김/536쪽·2만5000원·김영사

현실의 돈은 불안과 강박의 상징이 돼 버렸다. 저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화폐의 본래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DB
현실의 돈은 불안과 강박의 상징이 돼 버렸다. 저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화폐의 본래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DB
돈은 신성한가.

화폐에 관한 고찰은 그 본연의 기능과 현상에 집중돼 왔다. 교환수단이자 가치척도, 지불수단과 가치저장 수단의 측면에서 돈을 연구한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철학자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돈의 성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본래 돈은 감사와 신뢰의 징표이고 선물과 필요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며, 사람들 간의 교류를 돕는 촉매로서 우리 모두를 풍족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돈의 기원에 대한 주류의 시각은 원시적 물물교환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물물교환은 비교적 드문 일이었고 대부분의 경제적 교환방식은 선물이었다고 주장한다.

멜라네시아 남동부 트로브리안드 제도에서는 지금도 선물교환 제도인 ‘쿨라’가 존속되고 있다. A가 B에게 잉여 물품을 건네면 B는 C에게, C는 다시 D에게 주는 식이다. 이런 ‘선물의 순환’은 공동체의 근간을 이룬다. 사회 규모가 커지면서 선물을 주는 수단으로 돈이 등장했다. 그래서 돈은 본디 신성하다.

하지만 현실의 돈은 왜 불안과 빈곤을 가져오는가. 원인은 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에 내재해 있다.

고리대금은 돈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구조적으로 잉태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이자가 붙는 유가증권을 공개시장에서 사들이는 방식으로 화폐를 창출한다. 연준이 도이치은행에서 2900억 달러를 주고 유가증권을 매입했다면 기존에 있던 돈을 주고 산 게 아니라 도이치은행 계좌에 쓰인 만큼의 새로운 돈(본원통화)을 찍어 내는 것이다.

돈이 만들어지면 그만큼 빚이 생기며, 이 빚은 만들어진 돈보다 항상 더 많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더 많이 찍어내야 하고, 그만큼 더 많은 빚이 생긴다. 새로운 돈은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품과 서비스의 규모 역시 계속 성장해야 한다. 이처럼 화폐경제는 그 자체로 ‘성장 강박’을 가져온다. 하지만 상품과 서비스는 유한한 자원이다. 성장을 위해 자원을 끌어다 쓰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빚어지고, 여기서 부의 불평등과 결핍이 초래된다.

저자는 돈이 본래 목적대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면 지역경제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지역 화폐,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면 가치가 떨어지는 역(逆)이자 화폐, 채굴되지 않은 석유 같은 공유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 등으로 돈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매우 독창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또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는 P2P 경제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을 현대의 기술과 문화를 거부하는 원시주의자로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수렵·채집 시대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고 전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고차원적으로 조직된 신성한 문명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물론 미친 듯 오르는 전세금과 바늘 하나 꽂을 데 없는 취업전선을 생각하면 저자가 그려내는 꿈같은 미래에 공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와 지역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내놓는 번뜩이는 통찰과 발상의 전환, 공동체 재건을 위한 고민의 노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일독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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