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황용필]사람이 그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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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필 성균관대 초빙교수 체육진흥공단지점장
황용필 성균관대 초빙교수 체육진흥공단지점장
직장 동료들에게 ‘2014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7가지’를 소개해 줬더니 퇴근 무렵 한 동료가 목록 중의 하나인 ‘손 편지’를 써 왔다. 난 여전히 계획 중인데 동료는 행동으로 바로 실천해 나를 부끄럽게 했다.

12월에 들어와서 올해 안에 꼭 이루고 싶은 리스트는 7가지였다. 묵은 때 벗기기, 추억 만들기, 멘토링 하기, 모르는 사람 돕기, 새로운 도전하기, 손 편지 쓰기, 서운한 마음 지우기.

얼마 전 나는 평생 처음으로 결혼 주례를 봤다. 신랑은 원양어선의 선장이고 신부는 미용실을 경영하는 헤어디자이너인데, 둘 다 40대 중반이다. 적잖은 나이에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새내기들이라 저명한 분을 주례로 모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가 어른들의 양해로 신부의 어린 시절 추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촌 오빠인 내가 주례로 나선 것이다. 어린 시절 일찍 부모님을 여읜 가엾은 사촌 여동생이라 한층 뜻깊었다.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은 주례사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신랑이 마도로스라서 이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이 주례를 통해 나는 2014년의 송년 리스트 중 하나를 이뤘다. 주례사가 신선해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눈물나게 고마운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험난한 세상에서 잘 성장해 줬고 늦은 나이에 평생의 배필을 맞은 여동생의 기특함과 고마움이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질적 문화와 문화가 결합된다는 점에서 결혼은 대단하지만 위험한 도박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서로 다른 사람끼리의 일생이 오고 문화가 만나기 때문에 그렇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서로 손을 꼭 잡으면서 다짐했다. “건강한 가정, 따뜻한 배필이 되어 언젠가 그 강을, 임아, 멋지게 건너자”라고. 더불어 어떤 버킷리스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주변 사람부터 챙기는 것.

해가 가기 전에, 지방 근무할 때 알게 된 환경미화 할머니를 만나러 충남 당진에 가봐야겠다. 3년 만의 만남이 될 것 같다. 늘 내 얼굴이 선하다며, 나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웃던 할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다.

황용필 성균관대 초빙교수 체육진흥공단지점장
#연말#동료#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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