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사면論… ‘총수 부재’ 잠자는 투자 깨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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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셰일가스 개발 힘받나 촉각… CJ는 물류거점 확대 관련 주목
지지부진한 사업 탄력 가능성 기대

26일 SK그룹은 ‘조심스러운 기대감’에 부푼 분위기였다. 최경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 정부 고위층이 잇따라 ‘기업인 선처’ 발언을 한 데 따른 것이다. SK그룹의 한 임원은 “총수의 거취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면서도 “SK가 처한 현실을 ‘경제 살리기’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이 1년 8개월째 수감 중인 SK그룹은 대규모 투자와 해외 시장 진출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그룹의 ‘양대 엔진’인 자원 개발과 반도체 부문 모두에서 추진 동력이 사라졌다.

우선 글로벌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셰일가스 광구 확보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SK이노베이션은 2011년 7월 브라질 원유 생산광구를 24억 달러(약 2조5000억 원)에 매각한 뒤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왔지만, 지금까지 6월 미국 오클라호마 주(셰일가스 생산 가능)와 텍사스 주(일반 원유)의 광구를 총 3억6000만 달러(약 3870억 원)에 인수한 것이 투자의 전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자원 개발은 투자 규모가 크고 위험도가 높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총수가 결정해야 할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도 장기 성장 계획 추진에 차질이 생겼다. 최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후 D램에 편중된 사업 영역을 개편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퀄컴, 시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진과 만나 중·장기 차원의 협력을 모색했으나 구속 수감 이후 글로벌 기업과의 사업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

최 회장은 또 매년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직접 참석해 세계 경제 리더들을 만나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왔으나, 올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총수의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면서 투자 차질을 빚는 것은 이재현 회장이 재판에 계류 중인 CJ그룹도 마찬가지다. 이 그룹의 올해 상반기(1∼6월) 투자 예정 금액 1조300억 원 중 35%인 4800억 원의 집행이 중단되거나 보류됐다. CJ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을 논의하는 ‘그룹 경영위원회’가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월 1회가량 부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지만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서 수백억 원 규모의 투자 집행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CJ대한통운은 올해 국내 중부권 물류터미널 거점 확보에 6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보류했다.

이재현 회장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이나 가석방 대상은 아니지만, 정부의 기류가 바뀐다면 재판 결과에 반영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오너 부재로 지지부진한 사업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 살리기의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기업들의 투자 부진이 경제 침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정부의 진단은 옳다고 본다”며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 총수들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주성원·김유영 기자
#sk#cj#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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