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상식 밖 행동 부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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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동물/더글러스 T. 켄릭, 블라다스/그리스케비시우스 지음/조성숙 옮김/
380쪽·1만6000원·미디어윌

미국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아이 넷을 둔 유부남이었는데도 한 여성과 오랫동안 혼외정사 관계를 유지했고 출장 틈틈이 다른 여성들과 짧은 외도를 즐겼다. 그의 전기 작가는 킹이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지만 육체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한다. 킹은 위선자였을까.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렌즈를 통해 킹이 다중인격장애였다고 진단한다. 정신 질환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 다중인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진화를 통해 가장 적합한 형질을 발전시켜 온 인류는 각각의 상황에 맞게 최소 7개의 부분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킹의 행동은 숭고한 인권운동을 벌이는 자아와 육체적 욕망에 따르는 자아의 서로 다른 행동이다. 물론 부분 자아가 비도덕적 행동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왜 킹이 그런 행동을 저질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면 7개의 부분 자아는 어떤 것일까. 자기 보호, 질병 회피, 친애, 지위, 짝 획득, 짝 유지, 친족 보살핌 등이다. 이런 자아들은 우리 조상이 생존과 진화를 위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유리했던 특성을 우리 내부에 남겨둔 결과다.

왜 여자들이 헌신적이고 착한 남자보다 바람기 가득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지, 왜 가난한 남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여자친구에게 명품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왜 돈을 펑펑 낭비하는지, 사회의 전문직에 속하는 엘리트들이 왜 사이비종교에 빠져들어 모든 것을 탕진하는지 등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보들의 행진’이 바로 진화를 통해 획득된 부분 자아 탓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성적 동물이 될 수 있는가. 이 책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분 자아가 적합한지를 자문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적어도 우리에게 여러 부분 자아가 있다는 것과 이러한 부분 자아가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성의 동물#흑인 인권#다중인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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