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당청 관계의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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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여권의 대표적 친박(친박근혜) 인사인 전직 의원 K 씨. 올해 초 청와대에서 언론 유관기관의 장으로 내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갑자기 돌발변수가 생겼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무성이 7·14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K에게 접전 지역 책임자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기관장 내정 통보를 받은 K는 의례적인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김무성을 만나고 나온 직후 K는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전당대회에서 김무성을 돕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는 추궁이 따랐다. 최종 결정 난 게 아니라고 항변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김무성과 K의 대화 내용을 들여다본 듯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결국 K는 기관장 인사에서 낙마했다. 전당대회가 끝난 지 두 달 가까이 돼 가지만 아직도 그 자리는 비어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체제는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추석 연휴 전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혁신 의지가 퇴색되긴 했지만 당내에서 김무성 체제는 갈수록 공고화되는 분위기다. ‘낮술 하면 제명(除名)’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타라’는 행동강령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당은 홀로 움직일 수 없다. 청와대와 자동차 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국민도 “당청은 한 몸”으로 보고 있다. 새누리당이 ‘김무성당’으로 변신의 페달을 밟고 있지만 이 당의 ‘오너’는 여전히 박근혜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기관장 인선에서 낙마한 K의 사례는 당청 관계의 불편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쉬쉬하면서도 ‘박근혜 따로, 김무성 따로’의 현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이다. 2016년 국회의원 총선 공천을 의식한다면 김무성을 외면할 수 없다. 집권 2년 차에 현재 권력인 청와대를 모른 척하기는 더 어렵다. 정부직이나 공공기관장 인사, 정치인들을 겨냥한 사정(司正)도 청와대의 뜻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청와대 모 고위 인사가 김 대표와 긴밀한 듯한 태도를 보여 박 대통령의 강한 질책을 받았다는 얘기는 여권 내 정설로 회자되고 있다. 김무성과 가까운 인사들 중에서 청와대를 의식해 김무성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당청의 틈새에서 교묘한 ‘줄타기’가 벌어지는 판국이다. 한 여권 중진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지 않으면 여권의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무성도 당 대표가 된 이후 청와대를 향한 직설적인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청와대도 여당에 대한 불만은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청 관계가 매끄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의도에선 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인사가 사석에서 김무성에게 “형님, 이젠 청와대에 좀 유연하게 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당청 관계가 불안해 보였던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청와대와 당시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갈등이 잦았다. 대통령이 밀었던 국무총리 등 정부 인선안을 놓고 여당 지도부는 “청와대가 당을 죽이려는 음모”라며 강력 반발했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07년 노 대통령은 당시 여권 후보군과 자주 충돌했고, 여권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부 친노(친노무현)와 다른 정파의 갈등은 이 시절 불편했던 당청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뤄야 할 예산안은 물론이고 주요 국정 현안은 당청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당청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식으로 나간다면 그 부담은 여권 내부에 그치지 않는다.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박근혜#친박#김무성#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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