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우경임]식물국회에 발목잡힌 국가안전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우경임 기자
우경임 기자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열고 ‘과도기 안전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과도기’는 무슨 의미일까.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신속하게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신설하겠다던 국가안전처가 출범하기 전까지다.

‘안전관리 계획’은 당초 신설될 국가안전처가 주도적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정부는 4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정쟁을 벌이느라 125일째 ‘처리 법안 건수 0’을 기록한 국회에 꽁꽁 묶여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안전처 신설을 염두에 둔 정부는 “안전 분야 지휘부를 일원화한다”고 했지만 당분간 안행부 제2차관, 소방방재청 차장, 해양경찰청 차장이 참여하는 ‘삼두체제’의 안전관리협의체로 운영된다.

안전 강화 대책도 나왔다. 40m 이상 심해 구조업무를 맡은 특수구조단을 현재 남해 한 곳에서 서해와 동해에 추가로 설치하고 전국 연안 90개 파출소에 12t급 고속 구조정을 배치한다. 중앙119구조본부를 확대해 수도권 충청강원권 영남권 호남권에 119특수구조대를 설치한다. 단, 이런 계획에는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예산은 확보됐는지, 구체적 추진 일정이 어떤지 궁금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겠다”를 반복하는 정종섭 안행부 장관의 답변은 안쓰럽게 느껴질 만큼 무력함이 묻어났다. ‘식물 국회’가 ‘식물 정부’를 만든 셈이다. 이날 합동브리핑은 국회를 향해 “정부조직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는 호소의 뜻도 담고 있었다.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대국민담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같은)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민의 개혁 열망은 높아졌는데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7월 일반 국민 800명과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국가대혁신의 방향을 모색하는 설문조사를 했다. 국민 88%가 “국가대혁신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개혁 대상 1위로 정치인(일반국민 56.9%, 전문가 73%)이 꼽혔다. 국가대혁신의 골든타임을 또 ‘정치’ 때문에 놓친다면 “그 따위 국회 없애라”는 주장이 나와도 할 말이 없지 싶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국회#국가안전처#안전관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