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930년대 뉴욕 ‘희귀 詩集’ 도난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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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우의 도둑들/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노상미 옮김/372쪽·1만6000원·책세상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 지금이야 명성이 자자하지만, 초창기 시집을 내놓을 땐 참으로 별 볼일 없었다. 첫 시집 ‘티무르’를 개정한 ‘알 아라프, 티무르’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겨우 250부만 찍었다. 평단도 시큰둥했다. 예상했겠지만, 포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시집의 가치는 어마어마해졌다. 구하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운 좋았던 뉴욕 공공도서관은 한 수집가가 갖고 있던 초판 1권을 기증받는다. 이후 책은 이 도서관에 있었다, 1931년 한 젊은이가 열람 신청을 할 때까지는. 그리고 사라진 시집은 인근 중고서적 거리인 ‘북로우(book row·브로드웨이 4번가)’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은 참 신기한 책이다. 탈탈 털고 줄거리만 보자면 별게 없다. 비싼 책을 훔치는 도둑들이 있고, 이를 잡으려 뒤쫓는 도서관 특별조사관이 나오는 게 다다. 이 뻔한 소재를 ‘희귀 서적 큐레이터’란 생소한 직함을 가진 저자가 맛깔스럽게 비벼내니 너무나 흥미진진한 얘기로 탈바꿈했다. 기막힌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만한 범죄소설이나 스릴러영화는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게다가 법학 박사와 문헌정보학 석사 학위를 땄다는 저자의 전문 식견도 대단하다.

아마 이 책의 매력은 사건 자체보다 은은히 배어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있지 싶다. 대공황 시절이긴 해도 1930년대란 시대적 배경과 퀴퀴하지만 정겨운 헌책방의 향취가 어우러져 근사한 앙상블을 이룬다. 이제는 CSI류 드라마를 통해 첨단과학수사에 익숙해졌는데도, 파이프를 물고 스윽 범인을 지목하는 명탐정 홈스의 매력이 여전하듯. 덧붙이자면, 빅밴드 재즈를 틀어놓고 이 책을 읽어보시라. 분위기가 훨씬 산다, 짜잔.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앨런 포#북로우의 도둑들#희귀 서적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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