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농촌 마을 바람골에 찾아온 이상한 기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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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를 쏘았나/김영현 지음/398쪽·1만3800원·시간여행

실천문학사 대표, 한국작가회의 부회장을 지낸 작가가 2007년작 ‘낯선 사람들’ 이후 7년 만에 내 놓은 신작 장편소설이다. 2012년 1월부터 11월까지 일간지에 ‘짐승들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묶고 1년에 걸쳐 다듬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은 시인이자 논술학원 강사인 하림. 학원장이 빚만 잔뜩 내 놓고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졸지에 백수가 된 그에게 친구 동철의 소개로 알게 된 여성화가 재영이 한 가지 제안을 해 온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재영의 고향 ‘바람골’에서 최근 친척의 개가 두 마리나 엽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곳에 몇 달간 머물며 어찌된 일인지 알아 봐 달라는 것. 한때 하림의 연인이었지만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통보한 은주와, 하림을 사랑하지만 결혼은 할 수 없다는 싱글맘 혜경과의 관계도 정리할 겸 하림은 제안을 받아들여 바람골로 향한다.

과연 누가 어떤 목적에서 개를 죽였는지를 밝혀가는 추리소설의 외투를 입은 이 작품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바람골 주민을 갈라놓은 갈등과 대립이 조금씩 드러난다. 이곳에 자본을 끌어와 대형 위락시설을 지으려는 세력과 기도원을 지으려는 인물들 사이의 반목이 고조되는 가운데, 또다시 개가 엽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소설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작가는 순진한 농촌 마을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자본과 개발 논리를 비판하고 베트남전 참전 같은 우리 아픈 현대사에 대한 성찰을 말하지만, 악인에 대한 분노나 처벌보다는 각각의 인물이 안고 있는 상처를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작가 스스로도 ‘세상에 대한 고통과 분노로 낳은’ 전작들과 다른 소설이라고 밝힌 작품이다. 고문, 감옥, 분노 같은 고통의 언어에서 일상의 언어로 치유와 깨달음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작품세계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사건들 사이의 비약이 자주 눈에 띄고 인물 내면에 대한 직접적 묘사가 다소 과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애초 일간지에 짧은 호흡으로 연재된 글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누가 개를 쏘았나#김영현#짐승들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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