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원재]朴당선인 ‘약속’보다 정책 우선순위 조정이 급선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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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정치부 기자
장원재 정치부 기자
#새누리당은 올해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반값등록금 공약을 지키기 위해 국가장학금지원 예산을 정부안보다 5250억 원 늘렸다. 0∼5세 무상보육 공약을 위해서는 영유아 보육 지원 예산을 4359억 원, 양육수당 지원 예산을 2538억 원 늘렸다. 그 대신 방위사업청의 방위력 개선 예산은 4120억 원 깎여 나갔다. 박 당선인의 공약에는 “국방 전력증강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노대래 방위사업청장은 3일 “안보 없이는 복지와 민생도 지켜지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전의 현안인 국가과학비즈니스벨트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용지 매입을 국고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재원 문제로 용지 매입비는 올해 예산에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대전 지역에서는 “선거가 끝나니 이럴 수 있느냐”는 말이 터져 나온다.

#박 당선인은 투표 전날 사병 복무기간을 3개월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약을 이행하면 한 해 2만7000명의 전력 공백이 발생하고, 이를 부사관으로 메우려면 매년 수천억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군 부사관 확충을 위해 증액된 예산은 158억 원에 불과하다.

올해 예산안은 박 당선인이 선거 후 처음 마주친 ‘불편한 진실’이다. 선거 기간 발표된 공약은 수천 가지에 이른다. 한정된 예산에서 하나의 공약을 지키려면 다른 공약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공약이 미뤄지거나 폐기되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더니 이럴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대선에서 다른 후보를 찍은 이들 사이에는 “어디 공약을 다 지키나 두고 보자”며 벼르는 움직임도 있다.

박 당선인이 당면한 ‘불편한 진실’은 예산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택시법은 버스업계와 택시업계의 이해가 극명하게 충돌하는 사안이다. 선거용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박 당선인은 선거 기간 “충분히 듣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최근 청와대에서 거부권 행사 얘기까지 나오지만 “국회에서 합의한 내용에 덧붙일 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그런 애매한 태도를 취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인수위원회 기간에 공약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성과 비용 대비 효용을 따져 일부 공약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후순위로 돌려야 한다는 것.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인수위에서는 일관성이 없는 공약을 바로잡고, 효용 대비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드는 공약의 경우 점진적으로 하거나 범위를 좁히는 등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약이더라도 객관적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지키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박 당선인이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택시법처럼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사안이더라도 필요하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원재 정치부 기자 peacechaos@donga.com
#장원재#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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