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새 지도자 심층 비교]父傳子傳 ‘부전자전’ 정치신념 바탕된 성장배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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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고도성장 이끈 대통령의 딸… 환란보며 정치결심
시진핑, 덩샤오핑 개방 도운 부친 따라 성장에 방점
아베, 정치 실력자 집안… 국수주의 외조부 영향 커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모두 ‘태자당’(혁명 원로나 전직 고위관료 자제 그룹)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사의 부침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겪으며 성장했다. ‘역경 돌파형’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남북 간의 첨예한 대결구도 속에서 부모를 총탄에 잃는 아픔을 겪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도성장기에 자란 아베 신조 일본 차기 총리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일본’을 평생의 정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3명 다 집안 배경은 화려하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 총서기의 부친은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정무원 비서장, 국무원 부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을 지낸 시중쉰(習仲勳). 시 총서기는 태자당 중의 태자당인 셈이다. 아베 차기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와 작은 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총리를,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외상을 지냈다.

하지만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박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변을 주도했을 때 서울 장충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1963년부터 10·26사태로 아버지를 잃은 1979년까지 청소년기와 청년기 약 17년을 청와대에서 보냈다. 시 총서기는 부친이 1962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심기를 건드린 ‘류즈단(劉志丹) 사건’으로 숙청되고, 1966년 문화대혁명까지 터지자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산시(陝西) 성의 궁벽한 시골로 하방(下放)돼 반동의 자식으로 불리며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아베 차기 총리의 성장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A급 전범으로 복역했던 외할아버지 기시. 그는 어린 시절 “네 할아버지는 보수반동, A급 전범 용의자가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이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 그의 국수주의적 성향의 뿌리라는 분석이 많다.

정치 신념과 성향도 성장 배경과 떼놓을 수 없다. 박 당선인은 1952년생으로 1960, 7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이끌던 세력의 정점에서 자랐고, 또 1974년부터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경험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잊혀진 대통령의 딸’에서 ‘정치인 박근혜’로 변신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뤄놓은 나라인데” 하는 생각에 아찔했다고 한다. 미사여구보다 실천과 결실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였다.

시 총서기가 개방을 통한 성장에 방점을 두는 우파의 대표 주자로 부상한 것도 성장 과정과 무관치 않다. 1978년 복권된 아버지 시중쉰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鄧小平)이 몰고 온 개혁·개방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덩샤오핑의 절친한 친구로 경제특구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개방론자였던 것. 이런 정치적 DNA를 물려받은 시 총서기는 20대부터 개혁·개방이 가져다준 성장의 세례를 받으며 정치를 시작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아베 차기 총리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개최됐다. 개회식 날 자위대 비행기가 하늘에 오륜 마크를 그리는 장면을 본 그는 “이제부터 일본에서 뭔가 빛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자부심이 그의 국가주의 성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박근혜#시진핑#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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