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전직 경제장관들의 나라경제 걱정

  • Array
  • 입력 2012년 9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정희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역대 정부에서 각료를 지낸 11명이 참석한 ‘경제민주화에 관한 전직(前職) 경제장관 토론회’가 25일 열렸다. 하루 뒤인 26일에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 경제분야 전직 장차관과 학자, 전현직 언론인 등 100여 명이 참여한 ‘건전재정포럼’이 출범했다. 두 모임은 참여 인사들의 경력이나 비중을 감안할 때 여느 사회단체의 모임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의사표명을 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한국사회 심상치 않게 굴러간다”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권위와 영향력을 지닌 전직 경제장관들이 이 시점에 한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경제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정치권의 모습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각료로 일했던 정권들의 이념적 성향은 우파에서 좌파까지 다양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의 큰 흐름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고언(苦言)을 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만큼 심상치 않게 굴러간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경제를 관리하는 일은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하다. 경제문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없다는 제약에서 출발한다. 절약과 선택, 효율과 규율이 기본 원리다. 때로는 ‘괴로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 타협과 상생을 기본원리로 하는 정치논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금 그 상충의 최전선이 복지지출 급증에 따른 재정 악화와 경제민주화 문제다.

모든 문제를 경제논리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먹고사는 경제문제를 다수결과 민주주의 논리로 접근하면 낭비와 비효율, 나눠먹기 풍조와 고비용 경제구조를 초래하고 국민 생활수준의 전반적 저하를 낳는다.

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다르다. 경제발전이나 경제개혁에 성공한 국내외 정치지도자들의 공통점은 정치논리를 경제문제로부터 차단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사에서 역대 정부가 정치적 성향을 넘어 일관되게 유지하려 했던 핵심 정책이 재정건전성 유지였다. 이 점은 각 정권의 공과(功過)를 떠나 높이 평가할 만한 대한민국 행정부의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도 예산당국은 나라곳간을 지키기 위해 국방예산을 동결하고 깎기도 했다. 때로는 고집스러울 정도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집착이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로 확산됐을 때 한국이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비교적 선방했던 것도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줄줄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린 결정적 근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가 가진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고 유지하기만 해도 고령화와 저성장으로 재정 건전성이 저절로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세계경제 위기는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 경제를 다시 강타할지 모른다. 지금의 이런 위기상황이 최소 4, 5년은 더 갈 수도 있다. 다음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복지 공약은커녕 국내외 경제충격으로부터 한국경제를 지켜내기에도 벅찰 것이다.

정치권, 충정어린 조언 경청해야

따라서 다음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돈 쓸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아껴 두었다가 경제가 정말 어려워질 때 우리 경제를 지키는 안전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대선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복지공약들은 국민들의 기대치를 높여 놓아 누가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내 국정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우리 정치권은 지금 너무 흥분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과거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경제수장(首長)들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정어린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 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 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경제장관#나라경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