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상 치유하는 결속의 힘 또래들이여 똘똘 뭉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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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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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압력은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는가
티나 로젠버그 지음·이종호 옮김/532쪽·2만2000원·알에이치코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0대는 미래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 가난의 대물림, 그로 인한 무력감과 체념은 몸을 팔아 당장의 끼니를 때워야 하는 동력이 된다. 1998년 청소년 에이즈 사망 가능성이 50%를 넘어섰다. 성관계와 에이즈 공론화에 인색하고 보수적인 남아공 사회에서 돌파구는 없어 보였다. ‘러브라이프’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남아공 청소년 에이즈 예방 캠페인 ‘러브라이프’가 성공한 비결은 또래압력에 있다. 성교육으로 겁을 주고 약도 주며 설교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음료수 스프라이트 광고 캠페인을 모델로 삼았다. 연예인의 가십거리, 음악, 패션, 스포츠 행사, 연애 정보 등 10대들의 관심사를 활용해 그들이 동참하고 싶어 하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에서 소녀들은 또래 소녀들이 콘돔 없이 성관계를 맺자는 남자 친구를 왜, 어떻게 차 버렸는지 듣는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변화의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삶을 살아 가는 새로운 방법에 동질감을 느꼈어요. 나도 삶을 바꾼 내 친구처럼 될 수 있어요.”

책의 원제는 ‘Join the Club’이다. 뉴욕타임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또래압력을 이용한 사회적 치유책의 위력을 강조한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동기는 타인과의 결속감에 대한 염원”이라며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또래압력을 비틀어 보기를 권한다.

총 10장에 걸쳐 제시되는 사회적 치유책의 구체적인 사례들이 눈길을 끈다. 저자가 현장을 답사해 건져 올린 얘기들인 만큼 더욱 생생하다.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물러나게 한 ‘오트포르(세르비아어로 ‘저항’이란 뜻)’ 학생 조직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정당을 만드는 동안 오토포르는 파티를 벌였다. 이 학생 조직에서는 한밤중에 경찰을 피해 휴대전화를 지급받고 암호를 외우고 돌아다니다 체포되면 다음 날 록스타처럼 추앙을 받았다. 오트포르는 멋진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콘서트를 열었다. 이 조직은 비폭력 저항운동의 새로운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인도의 카스트제도 완화, 미국 텍사스 주 소수민족 학생들의 미적분 점수 향상 등의 사례를 또래압력의 산물로 소개했다.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의 그라민 은행도 또래압력의 좋은 본보기다. 돈도 부동산도 없는 방글라데시 극빈층에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평판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것. 이런 연대 담보는 빈곤이라는 거대한 사회 문제에 ‘손잡고 나아가기’ 방식을 채택하면서 빛을 발했다.

저자는 한 사람의 의지로는 해결하기 힘든 사회 문제를 가장 자연스럽고 효율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이 또래압력이라고 설명한다. 진짜 문제는 어둠의 수렁에 빠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룰 수 없는 고립된 개인들의 사회라는 것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또래압력#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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