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전영춘]‘푸드 마일리지’와 로컬푸드

  • Array
  • 입력 2012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전영춘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전영춘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오늘 아침에 먹은 빵의 원료는 어디서 왔을까? 제철이 아닌데도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포도의 수송거리는 얼마나 될까?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슈퍼마켓에서 주스를 사면서 내가 마실 음료의 원료들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원산지를 보곤 한다. 토마토즙은 칠레, 당근즙은 미국, 사과즙은 터키산…. 수천∼수만 km 떨어진 곳으로 참 멀리도 왔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갈수록 쌓이는 마일리지가 많듯 식품도 먼 나라에서 온 것일수록 마일리지가 많아진다. 식품의 마일리지, 즉 ‘푸드 마일리지’는 식품의 수송량에 수송거리를 곱한 수치로 나타낸다. 예로 5t의 식품을 20km 거리에서 수송했을 경우 푸드 마일리지는 5t×20km=100t·km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전체 수입 농식품의 푸드 마일리지는 약 3200억 t·km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인 1인당 푸드 마일리지는 약 7085t·km로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매우 크다.

식품 원료의 공간적 거리가 멀수록 소비자는 생산이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음식을 먹게 되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 또한 낮아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토양이나 기후 등의 차이, 신선도 저하로 소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푸드 마일리지를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로컬푸드’다. 로컬푸드는 식품을 수송하는 거리가 짧아 건강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고 연료 사용도 줄이는 장점이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은 식품을 생산하고 수송하는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을 상품에 적어 확인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발자국(food footprint)을 표시하자는 운동과 함께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이용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로컬푸드를 학교 급식에 적극 활용한 경우 학생들에게 영양적 식생활적 측면에서 더 바람직한 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 지역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적극 활용하는 3곳(전남 나주시 순천시, 경남 합천군)과 그렇지 않은 3곳에서 초중고 각 2개교를 무작위로 선정해 1년 동안 식단을 분석했더니 지역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 적극 이용한 학교가 그렇지 않은 학교보다 과일 제공 빈도가 3배 정도 많았다. 나물이나 무침류 제공 빈도는 더 높았고, 수입 과일과 튀김류의 제공 비율은 낮았다. 또한 로컬푸드를 학교 급식에 적극 활용하는 지역의 학교는 식혜, 수정과, 미숫가루 같은 전통음료의 제공 비율이 높은 반면 그렇지 못한 지역의 학교는 액상과당 등을 사용한 주스류의 제공 빈도가 높았다.

맛 좋은 우리 농산물을 먹는 것은 우리 몸을 살리는 동시에 지역 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어 농민들이 웃을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로컬푸드만 고집하는 것은 배타주의를 불러 소지역 블록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일정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농식품의 종류에 한계가 있는 만큼 영양적으로 균형을 이룬 풍성한 식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식품과 로컬푸드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먹거리는 로컬푸드에 바탕을 두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열대과일을 가끔 맛본다든지, 주말 가족과의 외식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어초밥 메뉴를 즐기며 다채로움을 인정하는 것이 유연하고 건강한 식탁을 만들 수 있다. 농업인들이 가꾸고 지킨 지역 농산물의 귀중함과 소중함을 깨닫고 지구촌 먹거리의 다름과 맛을 인정할 때 우리 밥상은 더욱 풍요롭고 건강해질 것이다.

전영춘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장
#푸드 마일리지#로컬푸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