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채선당 사건’이 말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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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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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채선당’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인터넷 공간이 뜨거웠다. 음식점인 그곳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임신부의 인터넷 카페 글이 발단이 됐다. 당장 음식점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시작됐다. 그러다가 불과 열흘 사이에 사건의 진위가 뒤바뀌는 반전이 일어났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종업원이 임신부의 배를 발로 찬 사실은 없다”고 발표했다. 쌍방의 다툼이었다는 게 수사 결과였다. 임신부는 “공황상태에서 인터넷에 글을 올리게 됐다”고 해명했다. 상황이 역전돼 인터넷에는 임신부를 비난하는 발언이 봇물을 이룬다. 초반에 채선당을 공격했던 누리꾼들은 이제 임신부 신상털기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임신부 측이 변호인을 통해 “억울하다”는 입장 표명을 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익명성 뒤에 숨어 ‘사이버 테러’

이번 채선당 사건은 사실 확인에 앞서 자극적인 말을 쏟고 거기에 쉽게 휩쓸리는 인터넷 여론의 폐해를 보여준다. 사실이건 아니건, 감정을 건드리는 어떤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다. 사실을 확인할 시간보다는 퍼져 나가는 속도가 빠르다. 대부분 이런 사건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북핵 문제처럼 해법을 찾기 어려운 이슈가 아니라 군대 면제, 폭행, 사생활 소문 등 감정을 건드리는 이슈들이다. 말초적 관심과 함께 신상털기도 빠른 속도로 이루어진다. 누리꾼 수사대 앞에 드러나지 않는 사생활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감’이나 ‘느낌’이 파워를 발휘한다. 인터넷에서의 의견 교환은 지극히 민주적이고 자유롭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사이버 테러’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파들의 목소리가 마치 대중의 여론인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목소리 큰 소수에 눌려서 말없는 다수의 의견이 정당한 몫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여론 수렴 과정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도 있다.

인터넷에서는 익명성 뒤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익명성은 사람들을 용감하게 만든다. 익명성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정체가 내게 알려지지 않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정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남의 정체가 내게 알려지지 않고, 내 정체가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왜곡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익명성은 결코 프라이버시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프라이버시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또한 자신에 관한 정보가 함부로 유출되거나 엉뚱하게 쓰이지 않도록 조절할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익명성 뒤에 숨어서 남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익명성을 자신의 프라이버시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선동적인 인터넷 여론 폐해 보여줘

익명성은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할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해서 자유로운 토론문화 발전과 효과적인 여론수렴에 기여할 수 있다.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진리다. 사실 자유에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해서 징벌적인 배상제도가 있어야 한다.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도 징벌적인 부분까지 포함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무책임하게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폐쇄회로(CC)TV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한 기업체가 억울하게 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또 한 인격체가 거짓말쟁이로 낙인 찍혀 매장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무책임한 명예훼손 중에서 CCTV 같이 명백한 증거가 없는 수많은 경우는 어떡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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