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명오]소방관 생명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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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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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재난과학과 교수
윤명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재난과학과 교수
2001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9·11테러 사건 당시 뉴욕 소방관 340여 명의 죽음을 가져 온 근본 원인은 통신장비의 성능 부족에 있었다. 건물이 붕괴할 우려가 있으니 즉시 퇴각하라는 명령은 그저 잡음으로 대원들의 귓가를 맴돌았다. 경찰이 철수를 개시한 시점에도 소방대원은 인명구조를 위해 초고층 계단을 올랐다. 장비의 부족이나 결함은 소방관들에게 이처럼 치명적이다. 화재진압 능력에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방대원 보호장구 턱없이 부족

‘위험에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나오라.’ 소방관들의 좌우명 중 하나다. 그들의 직무가 본질적으로 위험에 가장 오래 노출돼야 한다는 의미로, 현장 대원이 가져야 할 정신자세를 보여준다. ‘현장에서는 반드시 최소한 2명의 목숨을 구하라’는 말도 있다. 한 명은 구조 대상자이고 또 한 명은 소방관 자신이다. 소방관이 희생되면 현장 활동에 큰 부담을 주고 소방대원의 사기 저하와 소방역량 손실로 직결된다.

이처럼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또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화재 현장의 경우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각종 재난현장 중에서도 화재 현장이야말로 가장 힘든 곳으로 꼽힌다. 화열과 연기, 곳곳에서 일어나는 붕괴, 비명과 암흑이 뒤섞인 아수라장 그 자체다. 업무 환경이 이렇게 위험하다 보니 선진국에서도 소방은 가장 높은 위험 직업군에 속한다. 현대식 초대형 건물이든 낡은 창고 건물이든, 선진 도시지역이든 빈민가이든, 소방대원들에게 안전지대는 없다. 소방 활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부단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소방대원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효과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소방 활동의 여건을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돼 왔다. 우리나라 소방대원이 활용하는 장비나 개인 보호 장구의 성능 및 보유수량은 선진국의 평균 수준을 훨씬 밑돈다. 그런데도 소방장비 선진화를 위해 2012년 예산에 402억 원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예산이 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5년간 소방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연차적으로 투입할 2000억 원 규모 예산의 첫 연도분이었다는 점이다. 소방 5개년 계획이 사실상 폐기된 셈이다.

예산 확보 실패가 국회나 정부 예산 담당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산편성체제의 구조적 문제 탓이라는 점도 심각성을 더한다. 소방예산은 국가가 부담하는 국비와 지자체가 부담하는 지방비로 나뉘어 있다. 지방에서는 단기효과가 큰 주민사업에 집중하려 하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소방예산 투입 기피 현상을 이유로 정부예산의 규모를 억제하고 있다. 중앙과 지방 모두가 소방예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국회 또한 독자적으로 예산을 반영하기가 어렵다. 이대로라면 국민의 안전과 우리 소방수준은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희생 요구 앞서 장비부터 제공해야

이미 반세기가 지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 아직도 감동으로 후대에 전해지는 이유는 국민이 또는 인류가 비전을 달성하려면 희생하는 측과 보상받는 측의 균형 있는 의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공무원이든 일반시민이든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용기를 요구하려면 우리 또한 부담해야 할 것은 부담해야 마땅한 일 아니겠는가. 지금 불 속에 놓인 사람들과 구조하기 위해 뛰어드는 이들이 우리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자. 과연 언제 멈춰 설지 모르는 소방차와 펴지지 않는 사다리차, 동료와 공유해야 하는 목숨 줄인 공기호흡기, 세탁할 여분도 없는 방호복의 현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윤명오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재난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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