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계속 크는 32세 이현호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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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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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프로농구 신인왕… 8년차에 식스맨상 수상… 올해는 기량발전상 후보
이색 ‘트리플 크라운’ 도전

데뷔 9년차에 기량발전상 후보로 떠오른 이현호(전자랜드)가 레이업 슛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03∼2004시즌 신인왕 출신인 이현호는 8년차이던 지난해 식스맨 상을 받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데뷔 9년차에 기량발전상 후보로 떠오른 이현호(전자랜드)가 레이업 슛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03∼2004시즌 신인왕 출신인 이현호는 8년차이던 지난해 식스맨 상을 받는 등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 남자의 농구 인생은 스펙(기록, 경력)만으로는 좀처럼 짐작이 어렵다. 신인왕 출신이 데뷔 8년차인 지난해 뒤늦게 식스맨 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올 시즌 가장 강력한 기량발전상 후보란다. 3개 부문 타이틀을 모두 가진 사람은 국내 프로농구에 아직 없다. ‘이색 트리플 크라운’에 도전하는 알쏭달쏭한 농구 인생의 주인공은 전자랜드의 포워드 이현호(32·192cm)다.

이현호는 수비의 달인으로 불린다. 가드부터 용병 센터까지 가리지 않는 전천후 수비 능력을 지녔다. 올 시즌에는 공격에까지 눈을 떴다. 통산 평균 득점(3.8점)에 두 배에 가까운 경기당 6.7점을 기록 중이다. 특히 3점슛 성공률이 여느 슈터 못지않은 36.9%에 이른다. 전자랜드 유도훈 감독은 “이현호는 스포트라이트 뒤편에서 자신을 희생한다. 감독에게 꼭 필요한 선수다”며 “기록만 가지고는 이현호를 설명하기 어렵다. 평균 10점도 못 넣는 선수가 연봉 2억2000만 원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칭찬했다. 5일 인천 전자랜드 숙소에서 이현호와 만나 굴곡진 농구 인생을 들어봤다.

이현호는 성실함의 대명사로 유명하지만 학창 시절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말썽을 너무 피워 부모님이 집인 양천구와 멀리 떨어진 성북구 삼선중으로 전학을 보내면서 농구를 시작했다”며 “체격만 믿고 까불었다. 얼마나 평범한 선수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현호는 경복고 시절 청소년대표를 지내며 동년배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1999년 고려대에 진학해 프로 진출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겼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2003∼2004시즌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대학 4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집안이 기울기 시작했다.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8순위로 프로 무대에 턱걸이했다. 당시 신인 최저연봉인 3000만 원을 받고 삼성에 입단한 이현호는 “드래프트장에서 내 이름이 계속 안 불리자 얼굴이 붉어졌다. 내 인생에서 처음 겪은 좌절이었다. 농구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프로 첫 시즌에도 관심은 팀 동기 박종천(현 모비스)에게 집중됐다. 이현호는 “종천이가 ‘신인왕 타게 도와 달라’고 내게 부탁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열심히 운동을 안 한 것이 후회가 됐다”고 말했다.

독기를 품은 이현호는 시즌 중반부터 선배 서장훈의 부상 공백을 메우며 신인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평균 득점 3.2점에 불과한 ‘최악의 신인왕’이란 비아냥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데뷔 2년차부터는 출전시간이 줄어 2년을 벤치에서 보냈다.

이현호는 기본부터 다시 시작했다. 신인 시절 은사인 김동광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G(현 인삼공사)로 팀을 옮기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꾸준히 활약하며 ‘수비 베스트5’도 탔다. 2008년 꿈에 그리던 억대 연봉에 처음 진입했다. 전자랜드로 이적해 유도훈 감독의 조련으로 공격에도 눈을 뜬 이현호는 지난해는 코뼈 골절상을 딛고 식스맨 상까지 받았다. 이현호는 “농구는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거다. 후배들에게 준비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이현호는 올 시즌 또 다른 시련과 맞닥뜨렸다. 두 살배기 첫딸인 이아민 양이 난청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현호는 “아민이가 농구장에 와서 아빠를 향해 팬들이 보내는 환호를 잘 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항상 바란다”며 “지난 농구 인생에서 뭔가 풀릴 만하면 시련이 왔다. 다시 힘을 낼 이유가 생겼다”고 다짐했다.

인천=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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