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탁환]집필의 계절, 가을이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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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소설가·쉐이크연구소장
김탁환 소설가·쉐이크연구소장
가을이 왔다. 가을만 독서의 계절일 까닭은 없지만 스산한 바람과 함께 책 한 권 들고 싶은 마음이 인다. 최근엔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는 풍문이다. 책읽기로 만족하던 상당수가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터넷 매체에서 때론 서평으로 때론 여행기로 때론 사진글로 솜씨를 뽐낸다.

글을 돋보이게 만드는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장소별 날짜별 인물별 주제별 갈무리도 가능하고 근사한 배경음악도 쉽게 깔고 각자의 개성에 어울리는 글씨체도 선택의 폭이 제법 넓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글을 싣고 꾸밀 수 있지만 글쓰기 강좌와 스토리텔링 서적들은 오히려 느는 추세다.

디지털시대가 와도 글쓰기가 여전히 막막한 탓이다. 알맹이가 튼실하지 않으면 겉치장이 멋져도 요란한 빈 깡통에 머문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 소설가로 15년 남짓 살아온 탓에 글 쓰는 비법을 가르쳐 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심심한 결론부터 밝히자면 전업 작가도 여러분과 똑같이 글 앞에선 막막하다. 비법 따윈 없다. 그렇다고 미리 실망하진 마시라. 글쓰기를 꾸준히 향상시키는 몇 가지 ‘자세’를 찾는다면 감히 알려드리고 싶은 문장이 셋 정도 있다.

먼저, 글감이 떠올랐다고 곧바로 쓰지 말라! 사랑을 잃거나 짙은 음악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거나 아득한 밤바다를 바라보노라면 글감이 뒤통수를 친다. 이걸 쓰리라!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거나 공책을 펴거나 하다못해 화장지에 대고 뭔가를 끼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하는 글은 아침 햇살 속으로 스러진다. 지난 밤 자신만만하게 쓴 연애편지를 다음 날 아침 띄우기 전에 찢어버린 것이 나만의 경험일까. 그 아침을 견딘다고 해도 용두사미를 벗어나기 어렵다.

단순히 읽기서 쓰는 사람들 많아져


글감이 뒤통수를 치면 열 걸음 물러서야 한다. 좋은 글감을 초고로 옮기기 전에 관련 자료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고 답사를 떠나야 한다. 쓰고 있지 않다고 두려워 말라. 여러분은 이미 글을 쓰기 위한 과정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둘째, 글쓰기 위한 공간을 꾸며라! 거창한 작업실을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작은 방 한구석에라도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에게서만 자극받을 공간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관련 서적과 논문을 책장에 꽂고, 지도와 사진을 벽에 붙이고, 인물관계도와 캐리커처를 책상 유리 밑에 끼워라.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을 가라앉힐 잔잔한 음악도 고르고 지칠 때 홀짝홀짝 들이켤 커피도 사라. 글쓰기 외엔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무인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쓸쓸한 문장이 흘러나올 것 같지 않은가.

글쓰기 외에도 재미난 일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카페를 옮겨 다니며 글을 쓰는 작가들도 간혹 소개되지만, 글쓰기에 몰입할 땐 머무는 곳도 머문 시간도 잠시 잊기 마련이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일수록 산만한 공공장소보다 내밀한 몰입의 공간을 만들고 자주 젖어드는 편이 낫다.

셋째, 개악(改惡)의 순간까지 고쳐라! 일찍이 헤밍웨이는 초고를 세공이 끝난 보석인 양 떠받드는 이들을 향해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일갈했다.

퇴고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교열이 아니다. 글쓴이는 퇴고하는 내내 눈 덮인 험한 산을 낮은 포복으로 오르듯 불행하다. 초고에서 손 볼 곳이 전혀 없으면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수정할 곳이 너무 많으면 초고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사실에 마음 상한다. 글쓴이는 이 중첩된 불행을 견디며 다양한 각도에서 초고를 고쳐나가야 한다. 그물망처럼 에워싸지 않는다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초고의 약점들을 잡아내기 어렵다. 소설이나 시나리오에선 구성, 등장인물, 갈등, 주제, 배경 등을 퇴고할 때마다 집중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초고의 절반 이상이 퇴고 과정에서 바뀌는 경우도 많다. 퇴고를 끝마치기 직전, 모든 요소들이 제자리를 찾은 후에야 문장 검토가 가능하다.

글감 떠오르면 글쓰기 공간 꾸며야

글은 왜 쓰는가. 흔들리기 위해서다. 흔들리지 않는 이는 지금 거둔 이 수확이 전부라고 자만하지만, 1mm라도 영혼이 흔들리는 이는 파릇파릇한 잎들 모두 떨어뜨리고 헐벗은 몸으로 추운 겨울을 기다릴 줄 안다. 그리고 이 겨울을 이기면 찬란한 봄과 더운 여름이 오리라는 것을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며 짐작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쓰는 이의 영혼이 먼저 흔들려야 하고, 또 이를 통해 읽는 이의 영혼을 흔들어야 한다. 글을 쓴다고 반드시 행복을 약속하긴 어렵지만, 삶의 우여곡절을 스스로 감내할 힘과 용기를 준다. 궁극의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먹먹하게 떠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영혼은 젊은 영혼이다. 텔레비전도 끄고 게임기도 저만치 밀어두고 책마저 덮은 뒤 하루에 30분이라도 홀로 빈 방에서 자신의 내면풍광을 들여다보며 단어를, 문장을, 문단을 길어 올리는 것은 어떨까. 램프 아래에서 바삐 움직이는 당신의 손가락이 무척 곱다. 바야흐로 집필의 계절 가을이 왔다.

김탁환 소설가·쉐이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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