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장롱이 삼켜버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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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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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게임의 파격적 재구성… 원작 대사와 엇박자 아쉬움
◇ 연극 ‘하녀들’ - 무대★★★★ 연출★★★☆ 연기★★★ 각색★★☆

장주네 원작의 부조리극을 장롱이란 좁은 공간 속 심리극으로 응축한 사다리 움직임연구소의 ‘하녀들’. 아시아나우 제공
장주네 원작의 부조리극을 장롱이란 좁은 공간 속 심리극으로 응축한 사다리 움직임연구소의 ‘하녀들’. 아시아나우 제공
처음엔 침대처럼 보였다. 마담(김미령)이 육감적 자태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침대는 ‘트랜스포머’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다락방 내지 지하실 문짝처럼 보이던 그 오브제가 서서히 들어올려지면서 정체가 뚜렷해졌다. 오 세상에, 그것은 한국 가정의 안방을 늠름히 지키고 있는 장롱이었다.

마담과 그의 하녀인 쏠랑주(정은영)와 끌레르(이은주)까지 3명의 여배우는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그 두 칸짜리 장롱의 문짝 2개와 4개의 서랍을 넘나들면서 주술을 외듯 ‘하녀들’의 대사를 토해냈다. 그동안 무대 한복판에서 수직으로 일어섰다 눕기를 반복하는 장롱 양 옆에 경대처럼 세워진 스크린으론 꽃잎과 세 여배우의 신체 일부분과 실루엣이 파편적 영상으로 투사되면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 주네의 원작은 일반적으로 마담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과 두 하녀들로 대표되는 피지배계급 간 현대적 권력게임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상징성 풍부한 오브제와 신체 움직임으로 독특한 무대언어를 구사해 온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상임연출가 임도완 씨는 이를 인간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투쟁의 극으로 재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장롱이란 공간을 개별 인간의 심리적 공간으로 응축시키면서 몸체의 주인인 마담과 그 제어와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저항과 탈주를 꿈꾸는 욕망으로서 하녀들의 술래잡기 놀이로 원작을 재구성한 것이다.

발상과 의도는 신선했다. 문제는 원작의 대사와 배우의 움직임에서 강렬한 공명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좀 더 섬세한 텍스트 작업을 병행하거나 아니면 그것마저 삼켜버릴 수 있는 비언어극으로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면 다국적 프로젝트로 출발한 이 작품이 더 풍성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0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1만5000∼3만원. 02-765-6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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