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지영]어문 규정 없애 표준어 현실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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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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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드디어 우리는 마음 놓고 ‘짜장면’과 ‘간짜장’을 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국립국어원이 8월 31일 ‘짜장면’을 포함해 모두 39개 항목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해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짜장면’은 오랜 기다림 끝에 표준어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우리는 ‘자장면’과 ‘간자장’의 묵직한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짜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인정돼 사전 표제어에 당당히 오르게 된 39개 어형은 현실 언어생활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간 표준어가 아니었던 것이 놀라울 정도다. 예를 들어 ‘간지럽히다’ ‘남사스럽다’ ‘맨날’ ‘토란대’ ‘허접쓰레기’는 각각 ‘간질이다’ ‘남우세스럽다’ ‘만날’ ‘고운대’ ‘허섭스레기’의 잘못이었다. 또 구어(입말)에서 사용되는 ‘∼길래’와 좋은 냄새에 대해서만 쓰이는 ‘내음’도 각각 ‘∼기에’의 잘못과 ‘냄새’의 방언형으로만 간주돼 왔다.

국립국어원의 이날 발표는 어문 규범을 세우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환영할 만하다. 표준어형을 발표하고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를 반영하는 방법을 처음 시도했기 때문이다. 즉, 표기법의 현실화를 어문 규정의 개정을 통해 이루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이룬 표기형을 사전에 올리는 방법으로 했다. 그리고 혼란을 없애기 위해 기존의 것과 새로 표준어가 된 말을 모두 사전에 올렸다.

어문 규범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했을 때만 국민에게서 존중받을 수 있다. 어문 규범이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이 ‘짜장면’을 비롯해 새로 인정된 39개 표준어를 열렬히 환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문 규범이 현실적이어야 어문 규범을 지키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문 규정이 버티고 있는 한 어문 규범의 현실화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문 규정이 사전의 표기형과 발음형을 규정하는 근거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정과 충돌하는 표기형이나 발음형의 현실화는 어문 규정의 개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성문화된 어문 규정은 어떻게 바꾸어도 절대로 언어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결국 국립국어원이 규범의 현실화를 이루기 위해 앞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바로 성문화된 어문 규정을 없애는 일이다. 성문화된 어문 규정이 없어지면 언어 사용 실태조사 결과를 어문 규범에 반영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개별 단어의 합의된 표기형이나 발음형을 언어 사용 실태조사 및 여론조사를 통해 바로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성문화된 ‘어문 규정’이 없어지는 것을 ‘어문 규범’이 없어지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어문 규정’이 없어진다는 것은 문교부 고시로 돼 있는 성문화된 문서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뜻이지, 언어생활의 사회적 약속인 ‘어문 규범’을 없애자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어문 규범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효율적이고 편하게 하고자 함이지, 비효율적이고 불편하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간 ‘짜장면’은 경직된 어문 규범에 대한 저항과 조롱의 상징이었다. 모두 다 ‘짜장면’이라고 하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민에게 어문 규범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감을 심어 주었다.

이제 우리는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쁜 날을 기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앞으로 우울하고 자조적인 ‘블랙데이’ 대신 즐겁고 유쾌한 ‘짜장면의 날’을 정해 친구들과 이날을 기념해 보자.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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