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찬국]외채 4000억 달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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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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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찬국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은행이 우리나라 대외채무(외채)가 4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하자 우려의 소리가 높다. 국내총생산(GDP) 약 1조 달러, 3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 연 5000억 달러의 수출, 2년 연속 달성한 300억 달러가량의 경상수지 흑자 등 비교 대상 지표를 감안하면 문제가 될 만한 규모는 아니다.

과거 단기외채 비중이 높아 사정이 악화되었을 때 외화 급전을 구하지 못해 낭패를 본 우리로서는 이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2006년부터 2008년 중반까지 절대 규모가 크게 늘었던 단기외채는 2008년 하반기 이후 큰 폭으로 낮아져 그 규모가 2007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시장이 평가하는,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산금리로 봐도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는 2008년 때보다 낮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도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왜 불안해하는 것일까. 아마 2008년 하늘이 반쯤 주저앉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2008년 하반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주요 금융사들에 대한 긴급 유동성 지원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부도 이후 국제 금융시장이 마비되면서 대형 금융사들 사이에도 돈의 흐름이 막혀 행해진 고육책이었다.

위기의 여파는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나랏빚이 많은 유럽 국가들의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문제의 국채를 보유한 유럽계 금융사들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들 금융사가 자금 운용 대상이기에 미국 단기자금 시장도 유럽 국가부채 문제 발생 시 파장이 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만약 그리스의 채무 조정 상황이 발생하고 유럽의 즉각적 대응이 미흡할 경우 그 충격이 우리 경제에 증폭돼 올 수 있다. 나쁜 상황을 상정해 보자. 비상상황에 처한 외국 금융사들이 일시에 유동성 회수에 나설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의 경색이 심할수록 회수 대상도 넓어진다. 지금 우리의 외채 통계에서 장기부채로 분류되고 있는 주식은 물론이고 정부의 장기국채도 마찬가지다. 만기가 남아 있어도 유통시장에서 팔면 현금화할 수 있다. 물론 물량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쏟아지면 가격이 폭락할 것이다. 소위 투매인데 유동성 필요가 크면 투자 손실에도 불구하고 팔아야 한다. 각종 자산가격 급락과 금리 급등이 나타난다. 그동안 역할이 커진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들도 한꺼번에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된다.

현재 외국계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이탈해도 원-달러 환율은 안정돼 있다. 자금이 국내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극한 상황이 되면 거의 모든 외국 자금이 한국을 떠난다. 당연히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보유액이 크게 줄 것이다.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져도 세계경제가 파탄 상태면 수출은 덕을 못 본다.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정책당국은 이런 걱정으로 종종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야 한다. 최근 은행들이 외화자금 관련 감독당국의 압박에 불만인데 이는 불가피한 조치다. 믿음직한 외화자금 공급처도 위기 상황이 되면 자기 코가 석자인 처지가 된다.

당분간 불요불급한 채무, 특히 외채는 피하고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8년 도움이 됐던 나라들과의 협력관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당장 주요 국가들의 금리가 한국보다 낮다고 저리 외국 자금을 빌려 이익을 보자는 발상은 위험이 크다. 아울러 기업들도 무역거래에서 자금 결제 지연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우려들이 지나가는 여름 끝자락의 실없는 괴담이길 빌 뿐이다.

허찬국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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