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세진]동반성장, 대기업 ‘선의’에만 기대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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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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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산업부
정세진 산업부
‘동반성장을 위해 납품 단가 인하 실적으로 임원을 평가하는 관행을 없애 달라.’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21일 이런 내용의 편지를 30대 그룹 오너 일가 62명에게 동반 성장 관련 서적과 함께 보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수장이 대기업 오너들과 직접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은 신선해 보인다.

▶본보 26일자 A10면 참조
최중경 “납품단가 인하 실적, 임원 평가에서 제외해달라” 30대그룹 오너일가에 이례적 편지

최 장관은 13일 코스닥 상장법인 최고경영자 조찬 세미나에서도 “대기업이 성과 평가를 할 때 (중소 협력업체를 상대로) 납품 단가를 깎아서 생긴 이익은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해왔다.

대기업 오너들에게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당부한 최 장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업의 선의(善意)에만 호소하는 동반성장 정책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한쪽에서는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납품 단가를 깎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기업의 존재 목적인 이윤 추구를 포기하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내 대부분의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산공정과 물류혁신을 통해 원가를 최소화하고 있다. 추가로 가격을 낮추려면 납품업체를 압박하는 손쉬운 유혹에 빠지기 쉽다. 기업의 오너들이 나선다고 해도 임원들이 납품 단가를 정상가격보다 깎았는지를 내부적으로 일일이 평가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최 장관은 현장의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대기업을 상대로 교섭능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많아지도록 산업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정부가 성과공유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홀로서기를 지원하고 있지만 상당수 기업인은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 편지를 받은 대기업의 오너들도 최 장관의 당부 편지를 일회성 호소로 넘길 게 아니라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경영학의 아버지인 피터 드러커는 1946년 출간한 ‘기업의 개념’에서 제너럴모터스(GM)를 단순한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관련을 맺으며 존재하는 ‘사회적 실체’라고 했다.

최 장관이 건넨 ‘패자 없는 게임의 룰, 동반성장’의 저자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대기업들이 왜 중소기업, 지역사회와 동반성장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분석한 부분을 대기업 오너들이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정세진 산업부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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