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희삼]고졸자-지방대 출신 채용 확산되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과 서울 소재 대학 입학을 위한 사교육 경쟁의 이면에는 노동시장에서 고졸자와 지방대 출신이 겪는 설움이 있다. 그런데 최근 산업은행이 10월에 있을 2012년 공채 인원 150명 중에서 특성화고 출신과 지방대 출신을 50명씩 선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산업은행의 고졸 출신 채용은 1997년 이후 15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학력 차별과 지역 차별을 깨는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찬사와 함께 수도권 대졸자도 취업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일종의 역차별 조치라는 항의도 나올 법하다.

산업銀 15년만에 고졸출신 채용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특정 학력이나 지역에 대한 채용 할당은 시장에서 생긴 불균형을 인위적으로 시정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며, 할당에서 제외된 처지에서 보면 역차별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학력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학력 제한을 철폐하면 고졸자가 대졸자 일자리에 접근할 기회는 생기지 않고 대졸자나 대학원 졸업자가 고졸자의 일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지방대의 위상이 수도권 대학보다 낮아지면서 지방대 출신의 취업 성과도 낮게 나타났다. 필자가 실증 분석한 결과 임금과 기업 규모 등의 격차는 입학 당시의 수능 점수 차이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수도권 대학이 특별히 잘 가르치고 있다기보다는 성적이 높은 학생을 뽑을 수 있는 입지 조건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기업은행, 국민은행, 신한은행, 광주은행, 부산은행 등도 외환위기 이후 고졸자에게는 사실상 닫혀 있었던 채용의 문을 조금 열었다. 예전에 고졸 행원이 하다가 대졸자에게 내준 창구 업무 일자리를 일부 돌려주는 조치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산업은행의 채용 방침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고졸 행원이 근무하면서 대학 과정을 무료로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후에는 대졸 행원과 동일한 경로로 승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고교 졸업 후 무조건 대학에 가고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취업하고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기 위해 나중에 학업을 병행하는 선진적인 고등직업교육 체제의 작은 시험대가 되는 것이다.

둘째, 채용 할당의 목적이 사회적 모범을 보이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사업조직의 전략적인 발전 방향과 부합한다는 점이다. 지방대 출신을 선발하는 것은 이들의 지역 네트워크와 장기 현지 근무 가능성을 활용하여 지방 지점의 영업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 있다.

기업의 채용을 대학의 입학생 선발에 견주어 보면 미국 유수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입학시키는 것도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런 환경의 학생들과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양질의 고등교육이 주는 혜택이 더 크고, 이를 통해 대학의 역할이 더욱 부각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진학결정에 영향 미칠것


그런데 이러한 은행권의 채용 변화를 보며 우리 사회가 고학력자 하향 취업과 구직 장기화로 대표되는 과잉학력 문제 그리고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될까? 그리고 자녀에게 꼭 대학에, 그것도 서울 안에서 가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좋을까?

아직은 변화가 주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청년들이 소수에 불과하고, 이들의 안착과 향후 성과를 지켜보는 시선도 매서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무릇 사회적 변화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소수로부터 시작돼 다수로 퍼지고 결국 일반화되었다. 특히 청년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금융권과 대기업, 공공부문의 채용시장에서 시작되는 변화는 청소년들의 진로 선택과 진학 결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제 그 변화는 좀 더 확산되고 좀 더 빨라도 좋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