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지현]‘학점 떼쓰기’에 기가 막힌 외국인 교수

  • Array
  • 입력 2011년 7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지현 사회부 기자
김지현 사회부 기자
한국 대학가의 비정상적인 성적 정정 요구를 지적한 본보 보도 이후 기자는 교수들에게서 여러 통의 e메일을 받았다.

▶본보 13일자 A6면 ‘학점 흥정’에 교수들은 괴롭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캐나다 밴쿠버의 주립대에 재직하다가 올해부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근무 중인 외국인 교수가 보내온 e메일. 지난달 첫 학기를 마친 그는 “수업을 들은 학생 9명 중 4명이 성적에 대해 불평을 했다”며 “한 대학원생은 A학점에 해당하는 90점을 받고도 A+로 올려달라고 요구해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는 “한국 대학생들이 이 정도로 성적 과대평가(grade inflation)를 기대한다는 점에 실망했다”며 “캐나다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전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성적 정정’이 유독 한국 대학에서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대학강사를 하다 현재 미국의 한 주립대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B 교수는 e메일을 통해 “한국 특유의 폐쇄적인 사제 문화와 불투명한 평가 구조가 낳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만 비난할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는 한국 대학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 그는 “교수 재량에만 맡기는 한국의 상대평가제도와 달리 미국 대학 수업은 대부분이 본인이 노력하는 만큼 성적을 받는 절대평가”라며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기 중에도 수시로 교수를 찾아와 성적 관련 상담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묻는다”고 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학점을 받고 뒤늦게 교수에게 항의하는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 명문 사립대의 C 교수도 “평소 강의 및 성적 평가에 소홀했던 교수들도 문제가 있다”고 반성했다. 그는 “그동안 교수 사회가 권위적이고, 또 강의 외 행정 업무에 치이다 보니 학생들의 성적 정정 요구를 불쾌하게만 여겨온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성적 부여는 전적으로 교수의 권한이며 정당한 사유 없이 ‘떼쓰기’ 식으로 가점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행태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고민에 눈과 귀를 닫은 교수들도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좀 더 나은 평가를 얻고자 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 의욕을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도 교육자의 몫이 아닐까. 사제 간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작이 국내 대학교육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방학 때마다 벌어지는 부끄러운 진풍경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지현 사회부 jhk8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