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를 비우는 절집, 나를 채우는 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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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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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전영우 지음/396쪽 2만3000원·운주사
◇바람이 지은 집, 절/윤재학 지음/248쪽1만2000원·우리출판사

나뭇가지마다 새파란 새순이 돋는 5월은 숲에 생기가 가득한 시기다. 우거진 숲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양지바른 산자락에 서 있는 절을 한두 번은 마주친다. 불자뿐 아니라 등산객들도 가쁜 숨을 돌리며 속세의 찌든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는 마음속 휴식처다. 길게는 천년 넘게 한자리에 머물고 있는 절은 저마다의 역사와 전설들을 품고 있는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은 산림학자인 저자가 절과 함께 절을 둘러싸고 있는 숲을 설명해 이채롭다. 이를테면 ‘사찰림 답사기’랄까. 절집 숲은 생태학적으로 가치가 높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973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녹화사업은 성공했지만 이 때문에 대부분의 숲이 40년생 이하의 어린 숲이다. 반면 절집 숲은 수백 년 이상의 수목으로 이뤄진 곳이 많다. 이런 이유로 국토 면적의 0.7%에 불과한 절집 숲이 식물 천연기념물 가운데 10.7%를 품고 있다.

충남 서산시 개심사(開心寺)는 봄에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왕벚꽃나무로 유명하다. 어린이 주먹만 한 크기의 개심사 왕벚꽃은 희고 붉고 푸른 꽃을 피워내기에 5월 개심사는 꽃대궐 같다며 저자는 탄복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 벚꽃길, 백양사 초입의 벚꽃길, 화엄사의 올벚나무도 저자의 추천 목록에 들어간다. 절집 주변에 벚나무를 심는 이유는 불가에서 벚꽃을 속세를 떠나 극락(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피안앵(彼岸櫻)’의 상징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유럽의 ‘산티아고로 가는 길’처럼 강원 인제의 백담사에는 ‘순례자의 길’이 있다. 백담사-영시암-오세암-봉정암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험하고 가파르기 때문에 불자들 사이에서 순례자의 길로 불린다. 저자는 이 길에 ‘천연림 터널’이라는 이름을 덧붙인다. 단풍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거제수나무 함박나무 개박달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와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가 가득해 마치 나무로 이뤄진 거대한 터널 같다는 표현이다. 이처럼 책에는 24곳의 절과 사찰림 이야기가 풍성하다. 숲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 땅이나 바닥에 걸터앉아 천천히 호흡하며 나무와 함께 숨쉰다는 것을 상상해보라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설악산 봉정암 주변의 운해(雲海). 백담사에서 시작해 봉정암까지 이어진 ‘순례자의 길’ 끝에 설악의 장관이 펼쳐진다. 운주사 제공
설악산 봉정암 주변의 운해(雲海). 백담사에서 시작해 봉정암까지 이어진 ‘순례자의 길’ 끝에 설악의 장관이 펼쳐진다. 운주사 제공
절과 숲을 함께 다룬 ‘비우고…’와 달리 ‘바람이 지은 집, 절’은 전국 23곳 절의 숨겨진 내력과 전설, 그리고 현지를 찾아 얻은 감상을 차분히 정리했다.

송광사는 국보 3건에 3점, 보물 19건에 110점이 있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큰 절이지만 석탑이나 석등이 없다. 그 대신 다양한 형태의 석축과 돌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운달산 김룡사의 가람(伽藍)은 누운 소의 모습이어서 스님들은 그 소의 눈에 해당하는 명부전에 머문다.

절에 대한 갖가지 내력이 흥미롭지만 사진의 비중이 높은 반면 글의 분량은 상대적으로 적어 해설이 한 층씩 더 깊게 들어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준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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