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손욱]엔지니어가 존중받아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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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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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욱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손욱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600년 전 세종시대, 조선은 세계 최고의 기술강국이었다. 일본에서 편찬한 세계 과학기술사 사전에 15세기 전반 50년간 세계 과학기술 업적 62건이 기록되어 있고 그중 29건이 조선, 중국이 5건, 기타 국가가 28건이다. 재위 32년에 어떻게 이러한 창조적 혁신이 가능했을까?

세종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솔선수범하였다. 싱크탱크인 집현전의 학사 99명 가운데 21명이 과학기술자였다. 그들과 밤낮으로 토론하여 정책을 결정했다. 노비인 장영실의 정밀한 재주를 존중하여 중국에 보내 천문기기를 연구하여 세계 최고의 천문대를 완성하게 하고, 주자소를 경복궁 안으로 옮겨와 장군 이천의 기술 역량을 높이 사 금속활자 갑인자를 완성하게 하는 등 수많은 기록으로 볼 때 세종이 얼마나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자를 존중했는지 알 수 있다. 세종은 언제나 리더로, 팀원으로, 멘터로, 격려자로 과학기술자들과 함께했다. 간의대 기술자들에게 높은 급여로 생활을 안정시키고 한양 주변의 벼슬을 내려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왕으로부터 존중받은 기술자들은 몰입하여 위대한 기술 업적으로 보답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몰입할 수 있는 나라, 창출한 성과를 올바르게 평가받고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나라, 과학기술자가 국가발전의 주체로서 존중받는 나라, 북유럽의 강소국 등 선진국은 대체로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도 영도들이 새해 아침에 원로 과학자들을 찾아 세배드리는 것으로 존경을 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자들은 존경받고 있는가? 우수 인재들이 과학기술을 기피하고 해외에서 공부한 과학기술 영재들이 돌아오지 않고 엔지니어들이 현장을 기피하는 현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국가 과학기술 예산은 해마다 10% 가까이 증가하는데 과학기술자들은 행복해하지 않고, 연구 생산성은 정체되고 효과성 효율성에 대한 논란은 높아만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그 답을 과학기술을 존중하고 과학기술자를 존경하는 문화에서 찾아야 할 때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미래의 융합기술, 뇌과학 등 신기술산업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지 못하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를 수 없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과학기술자가 존중받는 문화가 선결과제다. 이는 기업에서 고객만족경영을 하려면 먼저 종업원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뜻과 말과 마음이 통하면 존중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언로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과학기술부가 해체되고 보니 의지할 곳이 없어진 것이 과학기술계의 현실이다. 국무위원에, 청와대 비서관에, 국회에는 과학기술계 인사가 몇 명 있는가?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도 그들만의 행사였고, 100대 기술도 과학기술자들만의 얘기다. 한림원 회원들은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친목단체에 머물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얘기하며 그 주역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뒤를 이으려 할 것이고 평생을 걸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세종처럼 하면 된다. 최고지도자들이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자를 존중하면 모두가 따라온다. 말이 아니라 솔선수범의 실천이 중요하다. 21세기는 융합과 창조의 시대, 과학기술자의 창조적 혁신 노력 없이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공감하면 역사의 바퀴를 새롭게 돌릴 수 있다. 과학기술 인재들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면 이공계 기피를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의 인재들도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손욱 한국엔지니어클럽 부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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