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달콤한 ‘신들의 음식’은 노예노동자의 피와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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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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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캐럴 오프 지음·배현 옮김 416쪽·2만2000원·알마



축하와 잔치, 아이들의 웃음, 사랑, 밸런타인데이. 초콜릿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에는 어린이 노예노동과 인권 유린의 슬픈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캐나다 언론인인 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은 ‘카카오를 따는 손과 판형 초콜릿을 집는 손 사이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먼 거리’다.

가장 먼저 남아메리카 대륙의 마야제국 시절. 당시 시장의 가격표는 이런 식이었다. ‘노예는 100개, 매춘은 10개, 칠면조는 200개, 짐꾼의 일당은 100개.’ 상행위를 위한 단위 ‘개’는 다름 아닌 카카오 원두를 뜻했다. 카카오가 당시 법정 화폐였던 것이다. 색을 칠한 점토나 돌로 카카오 원두를 위조하는 일마저 번창했다. 3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카카오를 두고 펼쳐지는 인간의 탐욕을 암시하는 전조였다.

현대의 초콜릿은 거의 아프리카에서 온다. 원산지는 중남미지만 오늘날 세계 카카오의 절반 가까이는 코트디부아르의 무더운 정글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밋밋한 맛을 가진 카카오 원두는 정글에서 발효되고 말려진 뒤 갈린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설탕과 바닐라 등이 첨가돼 매혹적인 맛의 초콜릿으로 바뀐다. 이 마법과 같은 과정에는 카카오 원두를 발효시킬 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

저자는 대표적인 카카오 생산지인 코트디부아르의 시니코송 마을을 찾아 족장과 마을 사람들을 만난 장면을 인상 깊게 소개한다. “만약 카카오를 기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건 재앙이죠. 이건 우리의 생명이오.” 마을 사람들이 답했다. “카카오는 여기서 어디로 가나요?” “산페드로 항구로 가오. 그 다음에는 유럽과 아메리카로 가지요.” 이건 족장만 답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 카카오 열매로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이 질문에는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신들의 음식’이라는 카카오를 주로 생산하는 마을에서 아이들은 학교 대신 카카오 농장으로 출근한다. 학교는 물론이고 병원, 전기, 전화 같은 시설은 전혀 없다. 유럽에서 흔한 판형 초콜릿 가격이 500서아프리카프랑(약 0.76유로·약 1160원)이라고 말해주자 아이들의 눈이 커진다. 아이들의 사흘 치 일당보다 많다. 큼직한 닭 한 마리나 쌀 한 자루를 살 수 있는 ‘거금’을 서양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에 군것질거리로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운다는 말에 아이들은 더 놀란다.

20세기 후반 코트디부아르는 카카오의 주요 생산국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환금성이 좋은 작물인 카카오를 기르면서도 국민들은 지옥과 연옥을 오가고 있다. 카카오를 노리기는 정부나 반군 모두 마찬가지여서 카카오 생산지를 확보하려는 전쟁으로 고통받고, 세금이나 ‘통행세’ 같은 명목으로 자신들의 몫을 빼앗겼다. 세계인을 중독시킨 초콜릿의 힘은 다국적 제과회사들이 코트디부아르에 직접 진출해 코코아를 생산하게까지 만들었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석유만큼이나 초콜릿을 둘러싼 세계의 탐욕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카카오 농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가난의 수렁에 빠져갔고, 더 저렴하게 원두를 생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인류가 처음 카카오를 재배할 때의 사회악인 ‘노예제’에까지 손을 뻗치게 됐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카카오 생산을 위해 아이들이 굶다시피 일을 하며 밤중에 자물쇠로 잠긴 합숙소에서 잠을 잔다. 수시로 매를 맞아 등과 어깨에는 끔찍한 상처가 많다. 2002년 8월에는 코트디부아르 인근 국가인 말리에서 국경 밖으로 어린이 수십 명을 이송하려던 남자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아이 한 명당 3만 서아프리카프랑(약 7만 원)을 주는 어린이 인신매매를 감행하다 적발된 것이다.

웃음과 행복, 달콤함으로 인식되는 초콜릿에는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의 어두운 현실이 숨어 있다. 카카오 원두 품질을 검사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웃음과 행복, 달콤함으로 인식되는 초콜릿에는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의 어두운 현실이 숨어 있다. 카카오 원두 품질을 검사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책은 카카오를 둘러싼 부패구조에 관심을 가졌던 언론인 기 앙드레 키에페르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다. 캐나다와 프랑스 국적을 가졌던 키에페르는 농민들을 위해 시장가격을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할 기금이 무기 구매에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정권은 농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며 이를 정당화했다. 키에페르는 결국 2004년 코트디부아르에서 납치돼 살해됐다. 카카오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고 이를 폭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카카오가 목도했을 인류의 역사도 책은 세세하게 전한다. 초콜릿이 유럽에 소개될 당시는 특권층이 마시던 음료였고, 초콜릿 음료가 유럽 사교계의 강장 음료로 부상하던 때는 사회구조와 인권 등에 관한 혁명적인 이론들이 탄생하던 시기와 일치했다.

세계적인 초콜릿 제조업체인 허시키세스는 1940년대 초콜릿 바를 미국 군인들의 전투식량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해 번성했고, 유기농 초콜릿을 포함한 유기농 식품의 뒤에는 이미 거대 기업들이 주인으로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곁들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음식’이 아닌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밝힌다.

“나는 초콜릿이 뭔지 모르는 시니코송의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먹는 대부분의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초콜릿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카카오 열매를 따는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해주었다. 시니코송 아이들은 내가 바깥 사람들에게 그걸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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