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순구]물가지수와 체감 물가의 괴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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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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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한평생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물가의 변동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물가지수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가지수 산정 불가능에 가까운데

간단히 말하자면 5년 전과 비교하여 국민이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5년 전보다 얼마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한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 물가지수라고 할 수 있다. 일견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물가지수를 막상 계산하려면 곧 어려움에 직면하는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의 종류가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년 전 휴대전화 사용료가 월 5만 원이었는데 현재 4만 원이 되었다면 통신료가 20% 내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5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마트폰을 현재는 많은 국민이 사용하면서 스마트폰의 사용료로 월 10만 원을 쓰고 있다면 실제로 통신료 물가는 20% 하락하기는커녕 크게 상승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5년 전에 백화점에서 샀던 옷과 똑같은 옷을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가란 똑같은 물건의 가격이 얼마나 변했나를 알려주는 수치인데, 시중의 많은 상품이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상품에 밀려나는 현대에 이런 물가지수를 정확히 계산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번 물가지수를 구해야 하는 정부 담당자들의 노고를 경제학자로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어차피 정확한 물가지수의 산출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국민의 부담이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정확히 측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그 또한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구형 휴대전화를 기준으로 한다든지 또는 유행이 지나서 아무도 입지 않는 의류를 기준으로 계산하여 얻은 물가지수는 국민 생활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저개발국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를 믿지 않는데, 이는 그런 물가지수들이 고의든 아니든 부정확하고 불성실한 조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불안한 것은 물가지수를 산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품목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압력을 넣어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많은 부작용이 수반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국민이 많이 소비하는 빵의 가격을 억지로 10% 내리게 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빵을 생산하는 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일한 빵을 생산해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 다행이겠으나 이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이전과 동일한 품질의 빵을 생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부 생산자는 빵의 크기를 줄인다든지 아니면 국산 밀가루를 쓰던 것을 수입산 밀가루를 쓰는 방식 등으로 이전보다 못한 빵을 생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경우 가격은 내렸지만 양과 질적인 면에서 이전보다 못한 빵을 먹게 될 국민 입장에서는 물가가 진정으로 낮아진 것이 아니다.

기업 압박하면 품질만 나빠질 우려

이런 복잡한 물가 계산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올해 들어 우리 정부가 다소 억지로 물가를 내리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노무현 정부가 아파트 가격을 억지로 내리려다 오히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간 것을 우리 국민은 잘 알고 있으며, 현 정부 관계자들 역시 그러한 억지스러운 가격정책을 비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가 염려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경제적 부담이지 물가지수가 아니다. 억지로 물가지수를 낮추는 데만 신경을 쓰다 막상 국민의 경제적 부담 증가는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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