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원]제때 움직이는 공무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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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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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기름값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소비자는 L당 10원만 싸도 멀리 있는 주유소까지 찾아가게 되는 게 현실이지만, 국제유가가 오르면 기가 막히게 신속히 올랐다가 유가가 내리면 정말 찔끔 내리는 것이 기름값이다.

대통령 말에는 신속조치, 평소엔…

요즘 서민물가 폭등으로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 인하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부와 시민단체, 정유회사 등의 입장은 확연하게 다르다. 정유회사는 휘발유 가격 중 절반이 세금이고 유통과 주유소 이윤 모두 합쳐도 유가의 6% 정도니 기름값을 최대한 내려 봐야 L당 수십 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정유회사들의 가격 왜곡이 L당 100원은 된다고 보고 원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석유제품 값 인하를 위해 업계와 일부 시민단체가 유류세 인하를 주장했을 때 관료들은 유류세를 10%만 깎아도 2조 원의 세금이 날아간다는 계산하에 서민물가 폭등에도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관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일까? 대통령이 한마디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석유제품 가격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마자 물가안정대책회의가 열렸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잘나가는 부처 공무원들이 바로 모였다. 여기서 ‘석유제품 가격 안정 특별대책반’이 만들어졌다. 정말 신속한 움직임이다. 사실상의 결론까지 바로 제시되었다. 휘발유는 서민들에게 밀접하고 예민한 상품인 만큼 석유제품 가격 결정구조를 철저히 점검하고 유통구조 개선 같은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격 인하 요인이 없다면 정부가 인하를 강제할 수 없다는 합리적인 설명까지 덧붙였다.

여기서 필자는 기름값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신속하면서도 합리적이며 경제원리에 부합하는 대책을 내놓는 우수한 관료들이 왜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었느냐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제도적으로 공무원들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잘하는 것보다는 단지 문제가 없는 것이 더 중요했고, 성과를 낸 쪽보다는 문제가 없는 공무원들이 훨씬 잘나갔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인사행정에 관한 제도 개선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승진과 보직에서 고위직은 정치적 임용이 다반사이고, 하위직은 연공서열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공무원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정부조직의 성과는 추락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정책 결정의 투명성’을 보면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44위에서 작년에는 111위로 급락했다. ‘정부지출 낭비’도 2008년 33위에서 작년에는 71위로 추락했다.

성과보상 시스템으로 옥석 구분을

이러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공무원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대비 공무원 비중이 조사 대상 26개국 중 25위로 일본 다음으로 적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이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무원 비중은 지금의 두 배 수준에 달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공무원 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무능한 것도 절대 아니다. 결국은 정부 시스템이 문제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옥석을 구분한다’는 차원에서 유능하고 건전한 대다수의 공무원에게는 직업공무원제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게 우대해야 한다. 더불어 ‘접시를 닦다가 깬 것은 용서해도, 닦지도 않으려는 공무원은 용서 못한다’는 인사원칙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정한’ 공직사회이기 때문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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