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20선]<8>바다의 제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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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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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저 크롤리 지음·이순호 옮김/책과함께

《“튀르크군이 격퇴된 소식은 지중해 일대로도 소리 소문 없이 퍼져나갔다. 유럽 군주들은 실질적으로 도와준 것은 없었으나 로도스 섬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도 로도스 섬을 잃으면 지중해가 뚫려 오스만제국이 해로를 통해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계도 파멸하게 될 것’으로 보았다.”》16세기 지중해 ‘문명의 충돌’

1521년 오스만제국의 술레이만 대제는 로도스 섬으로 함대를 파견했다. 로도스 섬은 세계의 중심으로 불렸던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슬람계와 기독교계의 60년에 걸친 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바다의 제국들’은 1521년부터 1580년까지 계속된 기독교와 이슬람의 지중해 쟁탈전을 기술한 책이다. 예측불허의 폭풍우에 해적까지 들끓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죽을 각오를 하고 배에 올라야 했던’ 고난의 바다 지중해는,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강대국이 탐욕스럽게 노리는 곳이었다. 해역이 협소해서 좁은 물길로만 피아가 구분되기 일쑤였고 기습부대가 지평선에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바다, 섬, 해안 구분 없이 어디든 전쟁 지역이 되었고 바람과 기상 조건이 주요 변수였다. 어느 쪽이든 지중해를 갖는 곳은 두꺼운 바다의 벽을 얻는 셈이었다.

1560년까지는 오스만제국이 지중해의 권력을 잡아갔다. 해적들과 동맹을 맺어 지중해 해전 때 아군을 늘렸던 데다 유럽 각국이 신-구교의 대립과 이해관계의 충돌로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이용했던 것이다.

1560년부터 5년 동안 벌어진 몰타 섬 공방전에서 전세가 역전됐다. 600여 명의 기독교계 방어군인 구호기사단이 3만여 오스만제국군에 맞섰다. 4시간이면 끝날 거라던 전쟁은 4개월이나 계속되었다.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전쟁을 묘사한다. “시칠리아 부대 사령관으로 수비대의 우상이 된 데 로블레스가 튀르크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부주의하게 방탄 투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흉벽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당한 일이었다.…병사들은 다 허물어져 가는 성벽에서 적병을 한 명씩 쓰러뜨리고, 수제 수류탄, 돌덩이, 소이탄을 던지고, 근거리에서 야포를 발사하고, 기병도와 언월도를 들고 상대방의 진지로 난입해 들어갔다.”

1571년 오스만제국과 기독교연합군이 맞붙은 레판토 해전이 종결점이 됐다. 바다에서 격돌한 이 싸움은 4시간 동안 이어졌다. 이 짧은 시간에 동맹군은 튀르크 배 100여 척을 침몰시키고 137척을 나포했다. 전사한 튀르크군만 2만5000명. 병사들이 흘린 피로 바다는 선지처럼 변했으며 기독교연합군 함대는 ‘물에 떠다니는 시체들에 막혀’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레판토 해전은 세계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됐다.

십자군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간 성 요하네스 구호기사단,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지중해의 해적 바르바로사, 지휘관으로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 역사 속 인물들의 역동적인 활약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크다. 용맹스러운 전쟁 서사이기도 하지만 이슬람계와 기독교계가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에서 저자는 16세기의 지중해 전쟁을 ‘문명의 충돌’로 규정한다. 그 이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인간의 탐욕과 전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생존 본능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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