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병훈]7·28 재보선 누가 이겼단 말인가?

  • Array
  • 입력 2010년 7월 30일 20시 00분


코멘트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고 한나라당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에게 감사의 표시라고 넙죽 큰절을 해댄다. 그러나 국민은 도무지 불안하기만 하다. 작은 승리에 도취해 큰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엄밀히 말해, 이번 선거는 박빙의 승부였다. 압승이니 참패니 하지만 몇몇 선거구에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인물론’을 승리의 원인으로 꼽지만, 그것은 이긴 자에 대한 덕담에 불과하다. 선거 전이나 지금이나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번 재·보선은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고 한다. 6·2지방선거 때의 한나라당 패배와 비교하면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이 두 달 사이에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민심은 그렇게 금세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더 심각하다.

한국 선거에 ‘널뛰기 투표’가 일상화되는 듯한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손보기’, 즉 응징형, 저항형 투표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심이 급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청중(聽衆) 민주주의’의 유령이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 대중 정당의 쇠락 기미가 뚜렷하다. 좌우 모두 열성 당원 수가 급격하게 줄면서 정당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그 대신 미디어 정치가 범람한다. 대중의 감성을 건드리는 ‘흥행사 정치인’이 권력의 향방을 좌우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중이 정치무대의 뒤쪽으로 물러나 구경꾼 또는 방관자로 안주한다는 데 있다. 특정 정당에 대한 고정 지지가 눈에 띄게 약화되고,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이 자주 바뀌는 것, 그 결과 선거 때마다 이쪽저쪽으로 표가 쏠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유권자가 ‘청중’으로 자족하는 상황은 곧 정당 민주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선거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그리고 거대 담론이 소멸하는 문명사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정치가 점점 더 부박(浮薄)해지고 있다. 국가적 현안은 뒤로 밀리고 사사로운 이해관계가 정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선거에 명운을 걸지만 그것은 ‘당신들의 축제’일 뿐이다. 젊은이들의 ‘인증 샷 투표’를 미화할 것만도 아니다. 사려 깊은 고뇌를 마다하는 경박한 세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가 점점 더 ‘쫀쫀하고 사소’해지는 것이 시대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중국의 태산(泰山)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평지에 돌출해 있으니 눈에 띄는 것이다. 청중 민주주의 시대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힘들다. 그 대신 사소한 것이 두드러져 보인다. 소소한 실수가 참혹한 패배를 불러일으킨다. 정치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다. 이 시대는 조금만 잘해도 눈에 띈다. 조금만 더 진정성을 발휘하면 정치적 상승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렇다. 그는 결코 태산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시대의 요구를 읽고 대처하는 노력이 미국민의 마음을 산 것이다.

‘참패’를 당한 민주당 사람들은 뼈를 깎는 변화를 다짐한다. 그러나 국민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일이 있을 때마다 뼈를 깎겠다고 하는데, 그래서야 어디 뼈가 남아나겠는가. 한나라당은 겸허한 노력을 약속하며 국민 앞에 큰절하는 그 순간에 이미 계파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쫀쫀한 시대, 쫀쫀한 정치인들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가 침몰할 수도 있는데 언제까지 허투루 말장난이나 할 것인가.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