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이용규]잡지 해약도 석달전에 해야하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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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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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 용역을 계약하면 대부분 처음 계약한 기간 동안만 유효하다. 계약기간은 보통 1년이다.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나도 몇 년 전 이곳에 오면서 1년간 주간 잡지를 하나 신청했고 1년간의 비용을 지불했다. 1년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 잡지가 배달되고 요금청구서가 날아왔다. 당황하여 회사에 전화를 해 보니 3개월 이전에 해약 통보를 하지 않았으므로 자동적으로 올해에도 잡지를 본다고 간주한다고 했다.

기차 할인카드나 전화도 최소 3개월 이전에는 해약 통보를 해야 한다. 특히 전화는 3개월 혹은 6개월 간격으로 자동 연장되므로 잘못하면 사용하지 않더라도 6개월간 비용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불해야 한다. 특정 회사와 정원 관리 계약을 한 경우에도 몇 개월 전에 해약 통보를 하지 않으면 이듬해에 자동으로 연장된다. 연장 내용은 계약서의 한쪽 구석에 쓰여 있어서 처음 이곳에 온 사람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1년간 골프장 이용권을 구입하였는데 1년이 지난 이듬해 2월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당연히 12월로 계약이 끝난다고 생각했으나 이듬해 1월에 은행 계좌에서 해당 연도 1년 치 이용료가 공제됐다고 한다. 해약 통보를 미리 하지 않았으므로 자동으로 금년에도 골프장을 이용한다고 간주했다는 말이다. 결국 그 사람은 한국으로 곧 귀국한다는 서류를 회사에서 정식으로 발급받아 골프장에 보낸 다음에야 환불받았다.

한편 한국에서 집을 빌리는 경우 임차인이 별도로 더 있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임대차 계약은 자동으로 종료할 수 있다. 여기에 익숙한 한국인이 이곳에서 집을 빌리고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에는 매우 주의해야 한다. 집을 임차하는 경우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어도 임차인은 반드시 3개월 이전에 해지 통보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으로 연장된다. 주인에게 3개월 전에 이사 간다는 사실을 통보하지 않으면 이번 달에 이사를 가더라도 앞으로 3개월분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계약의 자동연장 관행은 자세히 살펴보면 소비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 만약 1년 동안만 계약이 유효하다면 소비자가 해약 통보를 하지 않았어도 소비자에게는 별 손해가 없다. 상품이 계속 필요할 경우에는 이듬해에 다시 구입하면 된다. 깜박 잊고 해약 통보를 하지 못했다면 소비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필요한 상품을 1년간 더 구입해야 한다. 물론 판매자 측에서는 기존 소비자에게 계속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판매자 중심적인 사고방식의 결과일 뿐이다. 소비자는 물건이 없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언제든지 필요할 때 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계약의 자동연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모든 것을 미리미리 계획하고 결정하는 방식에서 연유한다. 여행도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집을 수리할 때도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계약의 자동연장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방식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3개월 이전에 어떤 일을 결정하더라도 바뀌지 않고 시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사회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제도가 적당하지 않다. 1주일 앞의 일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변화가 많고 역동적인 한국, 변화가 적고 안정적인 독일, 이러한 차이도 계약의 자동연장 관행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이용규 한국은행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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