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 hide의 13주기…X JAPAN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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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일 16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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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일본 도쿄의 사찰 혼간지츠키지베츠인(本願寺築地別院)에서 12년 전 사망한 한 남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본당에 마련된 제단 위에는 3만5000명의 추모 인파가 놓고 간 꽃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제단 앞쪽에는 이날 추모식 주인공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다. 새빨간 머리에 눈에는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한 이 남자. 사진 양 옆으로는 고인이 한 때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사르며 연주했을 기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1998년 33세의 나이로 갑자기 자살하며 세상을 버린 X JAPAN의 전 멤버 hide. 콘서트 장에 모인 수많은 팬들의 심장을 들끓게 했던 기타리스트 hide의 13주기 추모식은 이렇게 진행됐다.

▶ 아시아를 뒤흔든 X JAPAN

X JAPAN은 초등학교 때부터 록과 함께 성장한 고등학교 동창 YOSHIKI와 TOSHI의 주도 하에 'X'라는 명칭으로 1982년 결성됐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의 라이브하우스를 전전하던 중 첫 싱글 'I'LL KILL YOU'를 발표하며 인디밴드로 나섰다.

이 즈음 기타리스트 hide(엑스재팬 활동 당시엔 HIDE)가 멤버로 합류했고 TV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아 나갔다. 하지만 당시엔 일본에서도 헤비메탈 록밴드는 대중음악 주류 장르가 아니었다.

시청자들의 반감으로 방송 출연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인디 생활은 오래 지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1988년 발매한 첫 앨범이 마니아 팬들을 중심으로 불티나게 팔리자 X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J-POP계의 관심이 점차 높아졌다.

헤비메탈 록밴드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1989년 메이저 대중음악계에 공식 데뷔했다. 소수의 마니아만이 즐길만한 강렬하고 실험적인 곡을 다수 선보였지만 때로는 록을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라도 쉽게 빠질 수 있는 발라드 곡도 발표했다.

이들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Endless Rain'(1989년)이 그렇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후렴구가 돋보인 이 노래는 이후 아시아 전역에 X JAPAN과 일본 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금지됐던 국내에서도 불법 복제음반을 통해 'Endless Rain'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X JAPAN의 록은 상당수 국내 록커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교본처럼 여겨졌다. 1990년대 한국에 유입된 대표적인 일본 대중음악으로 록은 X JAPAN이, 팝은 아무로 나미에가 꼽힐 정도였다.

▶ 일본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다

X JAPAN은 음악과 함께 빨갛고 노란 염색머리와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것 같은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짙은 눈 화장 등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스타일은 남다른 감각을 지닌 hide가 직접 담당해 연출했다.

같은 시기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한 일본의 다른 록밴드와는 이미지나 음악적으로 확연하게 달랐다. 대중성 강한 음악을 주로 선보인 록밴드 CHAGE and ASKA나 B'z, Mr.Children과는 이미지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

염색 머리와 눈 화장 등 독특한 비주얼록 스타일은 샤란Q도 비슷했지만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록의 흡입력 면에선 역시 다른 점이 많았다. 이런 점에서 X JAPAN은 음반 판매량과 대중적 인기 면에선 B'z, Mr.Children 등 다른 록밴드에 비해 떨어졌지만 일본 록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들의 록과 무대는 마니아를 열광시키다 못해 울고 웃게 만들고 기절시켰다. 한국에서 서태지가 그랬던 것처럼 X JAPAN은 일본의 사회적 현상과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개성을 바탕으로 일본을 벗어나 세계 진출을 시도하면서 1992년 그룹 이름이 기존 X에서 X JAPAN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개성적인 멤버들이 하나의 밴드로 뭉쳐 활동하다보니 내부에서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록밴드에 비해 멤버 교체가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런 점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 진출을 노리고 이름까지 고쳤던 X JAPAN은 음악적 지향점 등 서로 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1997년 해체했다.

▶ 해체…hide의 자살…그리고 부활
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hide 13주기 추모식에 놓여진 고인의 영정사진. NHK 뉴스 화면 캡쳐.
2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hide 13주기 추모식에 놓여진 고인의 영정사진. NHK 뉴스 화면 캡쳐.

X JAPAN을 해체한 뒤 멤버들은 각자 솔로 활동에 나섰다. HIDE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를 단절하려는 듯, 이름의 표기도 HIDE에서 hide로 고쳤다. 하지만 팬들은 해체 소식에 충격을 받은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비보를 접해야 했다. hide가 1998년 5월 2일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기타리스트이자 X JAPAN의 비주얼 담당으로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던 로커의 자살은 X JAPAN의 해체 소식에 버금갈 정도로 이슈가 됐다. 영결식은 TV 생방송으로 중계됐고 hide와 X JAPAN의 팬 5만2000명이 집결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일부 팬은 우상을 잃은 허탈감과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를 따라서 자살했다. 팬의 자살 소식에 또 다른 팬이 죽음을 택하면서 한 동안 베르테르 효과로 인한 연쇄 모방자살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hide의 자살로 X JAPAN이라는 록밴드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존재로 남았다.

2007년 X JAPAN은 hide의 자리를 비워둔 채 재결성했다. 그해 10월 22일 X JAPAN은 YOSHIKI, TOSHI, PATA, HEATH, 그리고 먼저 떠난 HIDE 다섯 명이 함께 오다이바에서 신곡 'I.V'의 뮤직비디오 공개촬영을 시작하며 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날 hide의 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마이크 스탠드와 기타가 놓여졌고 그의 기타 연주는 과거의 음원을 새 노래에 합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hide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인형이 등장했으며 팬들은 환호성과 눈물로 hide와 X JAPAN의 귀환을 반겼다.

YOSHIKI의 건강 악화로 재결성 이후 활동이 주춤했던 X JAPAN은 2일 hide의 13주기 추모식에서 오는 8월 중순 '부활 라이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록의 전설에서 무대로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밝힌 것이다. YOSHIKI는 이날 "hide는 영원한 친구이자 전우"라며 생사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가 영원한 X JAPAN의 멤버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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