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감각의 인식, 지역-시대따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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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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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역사/마크 스미스 지음·김상훈 옮김/300쪽·1만8000원·성균관대학교출판부

‘감각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장미를 인식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는 장미의 향기가 영적 진리 등을 상징한다고 보아 장미의 향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엔 향기의 상징성을 평가 절하하고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장미의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게 됐다. 사진 제공 성균관대출판부
‘감각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장미를 인식하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는 장미의 향기가 영적 진리 등을 상징한다고 보아 장미의 향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엔 향기의 상징성을 평가 절하하고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장미의 시각적 이미지를 중시하게 됐다. 사진 제공 성균관대출판부
《1890년대 멕시코 몬테레이에서는 악취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해변 호텔의 백인 업주들은 오징어를 잡아 말리는 중국 어부들에게서 악취가 난다며 소송을 냈다. 당시는 관광산업이 중요했던 시기였다. 결국 호텔의 백인들이 이겼다. 같은 지역에서 1930년대에 다시 악취 갈등이 있었다. 이번에는 해변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악취의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때는 관광업보다는 어업이 번창하던 시기였다. 공장 측은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관광객들의 코가 지나치게 예민할 뿐이라고 주장해 소송에서 이겼다.》

감각(후각)이 어떻게 ‘타자’를 만들어 내는지 알려주는 사례이자 감각은 사회적 역사적 정황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五感)이 보편적이지도, 역사 초월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문화적 정황에 따라 감각을 인식하는 인지과정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시각:예술-합리성 상징 최고대우

시각은 오감 중 단연 탁월한 지위에 있었다. 유럽의 상류층은 시각을 좀 더 수준 높은 심미적 감각으로 여겼는데, 1780∼1840년대 잉글랜드에서 있었던 미술 감상법의 변화에서 잘 나타난다. 1780년대에는 잉글랜드 미술관 관람객들이 예술품을 만지고 질감과 무게를 느끼면서 감상했지만 1840년대에는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만이 대우를 받았다. 예술품을 만지며 감상하는 것에 경멸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며 계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의학에서도 시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며 내과 의사들은 환자의 안색, 피부색, 피와 소변의 색깔과 같은 외견상의 징후를 중시했다.

서구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찾았다.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각은 더욱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사진과 현미경 등 기술의 발전은 눈에 권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육안 시력의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아주 작거나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은 육안으로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을 노출시킨 것이다. 겉보기에는 백인이지만 계통학적으로는 흑인인 호머 플레시가 1896년 열차의 유색인 칸에 앉기를 거부하며 제기한 소송도 시각의 한계를 보여줬다. 겉으로는 그가 흑인인지 백인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청각:의학발전에 결정적 역할


서구에서 청각은 시각과 ‘저급한 감각’인 후각 미각 촉각을 이어주는 감각으로 인식됐다. 또 제2의 서열을 차지하며 시각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청각은 의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르네 라에네크가 청진기를 발명함으로써 눈으로 볼 수 없는 환자의 몸속을 소리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해줬다. 아울러 청각은 19세기에 계급, 정체성, 민족주의 개념을 정착시키는 데도 활용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럽 정착민들은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이용해 피지배 계층의 노동 시간을 관리했다.

후각:인종-계급묘사에 자주 이용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확연하게 남과 나를 구분 및 차별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냄새는 특정 집단이나 인종, 성, 계급, 민족 등을 묘사하는 데 자주 이용됐다. 호머 플레시 사건에서 육안으로 흑인임을 구분하기 힘들어지자 재판의 상대였던 검사 측에서는 “그가 흑인이라는 걸 눈으로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의 인종적 정체성의 냄새는 확실하게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또 사람들은 냄새와 질병이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취약한 인상 비평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미각:지배층 정체성 확인 수단

미각도 후각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타자를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18세기 들어 노동자들도 신사처럼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자 영국의 지배층은 시각적으로는 계급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는 것을 불편해 했다. 이때 상류층만이 미세한 맛의 차이를 구별해낼 수 있고 노동자 계급에서는 이를 흉내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미각을 지배층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이용했다.

촉각:감정적이며 음란한 것 규정


촉각에 대해서는 음란하고 감정적이며 지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의 감각은 사회문화적 영향에 의해 바뀌기도 한다. 영국인과 미국인은 같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후각은 서로 달랐다. 1960, 7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노루발풀 냄새를 싫어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의 특정 세대들은 노루발풀의 냄새를 맡으면 의약품과 연고를 연상하지만 미국인은 박하사탕을 연상했다. 저자는 “감각이 사회 계급, 인종, 성, 산업화, 도시화, 식민주의, 제국주의, 자아에 대한 인식 등을 규정지었고, 거꾸로 사회문화적 구도는 인간의 감각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원제 ‘Sensory History’.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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