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내 맘 같지 않은… ‘남의 속’ 들춰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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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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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스타작가의 글 19편 모아
기발한 발상-특유의 분석력 돋보여

퍼즐 풀기로 엔론 사태 본질 설명
사소한 일상서 특별한 주제 이끌어내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말콤 글래드웰 지음·김태훈 옮김/432쪽·1만5000원·김영사

말콤 글래드웰의 책에는 특유의 흡인력이 있다. 우선은 막힘없는 글 솜씨 덕분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독창성을 꼽을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주제를 생각해냈을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풀어나갔을까 하는 생각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찰나에 이뤄지는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한 ‘블링크’, 유명 인사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친 ‘아웃라이어’에서도 그는 기발한 발상을 보였다.

이번 책에도 특유의 왕성한 호기심이 잘 나타난다. 잡지 ‘뉴요커’에 쓴 글 가운데서 19편을 뽑아 엮은 이 책은 이전 책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 그 대신 각각의 글은 사소한 일상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글쓰기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염색약의 역사에서 여성운동의 역사를 읽어내고, 테니스 경기를 통해 ‘위축’과 ‘당황’의 차이를 설명하고, 엔론 사태를 보며 ‘퍼즐’과 ‘미스터리’의 차이점을 구분해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첫 번째 글인 ‘진정한 색깔’은 모발 염색제 시장을 개척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광고 카피라이터인 셜리 폴리코프는 1956년 클레롤이라는 브랜드의 염색제 광고를 맡아 ‘염색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단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금발로 살게 해줘요’ 등의 카피를 만들었다. 염색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에 나온 그의 카피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1973년 염색제 시장에 새로 등장한 로레알의 카피라이터 일론 스펙트는 ‘난 소중하니까요’라는 카피를 선보였다. 이 카피에 고무된 여성들은 더욱 염색에 빠져들었다. 저자는 “두 사람은 염색이 계급의식과 여성운동, 그리고 자존감을 반영하던 미국 사회사의 독특한 일면을 대표했다”고 평가했다.

엔론 사태를 다룬 글에선 저자 특유의 분석력이 잘 드러난다. 그는 여기서 ‘퍼즐’과 ‘미스터리’의 차이를 말한다. 둘의 차이는 ‘정보의 유무(有無)’다. 그에 따르면 ‘퍼즐’은 정보가 없어 풀지 못하는 것이고, ‘미스터리’는 정보가 너무 많아 정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저자는 “엔론 사태는 퍼즐이 아니라 미스터리였다”고 말한다. 정보가 감춰진 게 아니었으며 엔론이 작성한 회계장부를 꼼꼼히 뜯어보면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얘기다. 예를 들자면, 엔론은 회계장부에 순익을 표시했는데 이는 계약을 근거로 미래에 실현될 수익을 미리 쓴 것이었다. 엔론은 3000개에 이르는 특수목적법인과의 내부 거래를 이용해 실적을 조작하기도 했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드러난 정보를 제대로 뜯어봤다면 엔론의 부실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고 글래드웰은 지적한다.

저자는 ‘실패의 두 얼굴’이라는 글에선 ‘위축’과 ‘당황’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예로 든 것은 1993년 윔블던 테니스 여자 결승 경기. 한 세트만 더 따내면 우승을 차지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던 야나 노보트나가 우승을 의식해서인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조는 계속됐고, 그는 우승을 슈테피 그라프에게 빼앗겼다.

저자는 “인간은 압박을 받으면 대개 흔들리는데 그런 경우 우리는 그들이 당황했다거나 위축됐다고 한다”고 전한다. 압박을 받을 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위축된다. 노보트나가 그런 경우다. 지난 실수를 곱씹다 경기를 망친 것이다. 당황은 위축과 다르다. 잠수 도중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이 닥치면 살고 싶다는 본능으로 옆 사람의 비상호흡기에 손을 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즉, 위축은 생각이 너무 많아 생기는 문제고, 당황은 생각이 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위축되면 본능을 잃고 당황하면 본능으로 되돌아간다.

글래드웰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유와 비교를 즐겨 쓰는 것이다. 그는 ‘이미지 판독의 허점’을 얘기하면서 전투기의 야간 폭격과 병원의 유방조영술을 거론한다. 1차 걸프전 때 미국 공군은 야간에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발사대를 폭격했다. 모두 100대를 파괴한 것으로 믿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단 한 대도 파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투기 조종사가 야간에 가로 세로 약 15cm의 화면에 의지해 폭격하는 것은 그만큼 부정확하다는 얘기였다. 유방암을 찾아내는 유방조영술의 경우에도 의사들은 완벽에 가까운 영상기술로 종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유관 상피내암은 이미지 판독에 문제가 있어 찾아내기 어렵다는 허점이 드러났다.

이 책의 제목은 동물 심리학자 시저 밀란의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광폭한 개들이 밀란이 손만 대면 온순해지는 모습을 보며 글래드웰은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비결이 있기에 개를 길들일 수 있을까’라는 게 일반적 궁금증이라면 그는 ‘밀란이 개를 길들이는 동안 그 개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를 생각한 것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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