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힙합∩(한국인∩일본인)=m-flo

  • Array
  • 입력 2010년 1월 20일 15시 46분


코멘트
일본 연예계와 스포츠계에는 재일교포 출신들이 많다. 일제시대에 강제적, 혹은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간 뒤 남게 된 한국인들이 사회적 차별을 당하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연예와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외국인을 보는 시각은 대개 두 가지로 갈린다. 유럽이나 미국 출신 백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백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무시하는 시선이다. 특히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에 대한 편견과 차별 의식이 유난히 강하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으려는 재일교포 출신 스타들은 자신이 한국인이거나 한국계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긴다. 일본 국적으로 귀화해서 부모가 물려준 한국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으로 성을 고치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고 뛰어난 능력으로 일본 사회의 억압과 차별을 이겨내는 스타들이 간혹 있다. 힙합듀오 m-flo의 VERBAL이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일본의 힙합듀오 m-flo. 재일교포 3세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힙합을 비롯해 소울, 재즈, 보사노바, R&B 등 다양한 흑인 음악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의 힙합듀오 m-flo. 재일교포 3세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힙합을 비롯해 소울, 재즈, 보사노바, R&B 등 다양한 흑인 음악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힙합으로 하나 된 한국인과 일본인

m-flo는 힙합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하우스, 재즈, 소울,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의 흑인 클럽 음악을 선보인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늦은 밤 클럽에서 맥주를 손에 들고 흥에 겨워 춤추는 남녀와 DJ부스에서 믹싱에 열중하는 DJ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VERBAL(본명: 유영기)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J-POP계에서 보기 드물게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이자 DJ다. 그는 m-flo에서 랩과 작사를 맡고 있으며 일본 힙합계에서 실력 있는 래퍼로 인정받고 있다.

VERBAL과 함께 m-flo의 또 다른 멤버인 ☆Taku(본명: 타카하시 타쿠)는 일본인이다. ☆Taku는 m-flo 음반의 작곡과 믹싱 등을 담당한다. 그는 힙합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흑인 음악에도 정통한 뮤지션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일본 도쿄의 국제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으로 공부할 때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난 학생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사이가 가깝진 않았다.

VERBAL은 학창시절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아웃사이더였다. 힙합에 빠지면서 이 같은 감정을 랩에 담아 부르기도 했다. 국적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돼 어울리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힙합은 결국 이들을 하나로 묶었다. VERBAL의 랩 실력과 ☆Taku의 음악적 재능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이었다. ☆Taku가 고등학생 시절 결성한 밴드 N.M.D에 VERBAL이 합류해 활
동한 것을 계기로 이들은 음악 인생을 공유하는 단짝이 됐다.
일본 힙합듀오 m-flo의 2004년 서울 공연 포스터. 재일교포 3세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클럽 뮤직의 대가로 불린다.
일본 힙합듀오 m-flo의 2004년 서울 공연 포스터. 재일교포 3세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클럽 뮤직의 대가로 불린다.

▶ 마니아 그룹에서 스타로 부상한 m-flo

학교를 졸업한 뒤 두 사람은 각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다른 길을 걷는다. VERBAL은 보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려 했고 ☆Taku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학을 다니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이 다시 뭉친 것은 1998년.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VERBAL과 ☆Taku는 m-flo를 결성했다. 이후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이들의 친구 LISA가 여성 보컬로 합류하면서 인디 그룹으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힙합,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흑인 음악을 탁월한 감각으로 소화해낸 m-flo의 음악은 클럽을 중심으로 마니아 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인디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은 그룹을 결성한지 1년여 만인 1999년 첫 싱글 'the tripod'를 내고 J-POP에 데뷔했다.

데뷔 이전부터 이미 팬층이 두터웠던 m-flo의 데뷔음반은 오리콘 주간차트 9위에 올랐고 14만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00년 9월 발표한 6번째 싱글 'How You Like Me Now?'는 경쾌한 리듬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22만장 이상 팔렸다.

2001년 1월엔 7번째 싱글 'come again'이 오리콘 주간차트 4위에 오르고 39만여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m-flo가 일본을 대표하는 정상급 힙합그룹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이 곡은 클럽에서 막 리믹스한 음악처럼 LISA의 감미로운 보컬과 VERBAL의 힙합 느낌이 물씬 풍기는 랩이 각각 따로 노는 듯한 신선한 구성으로 m-flo의 개성을 드러냈다.

후 m-flo는 대중성이 강한 곡과 함께 미래 사회나 우주를 소재로 한 실험적인 곡도 선보이며 음악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보컬 없이 난해한 전자음과 랩으로만 이어지는 9번째 싱글 'Dispatch'는 m-flo의 힙합 감각이 가장 돋보인 대표 작품이다.


▶ m-flo loves 힙합 & 한국

2002년 LISA가 탈퇴한 뒤 m-flo는 힙합이나 클럽 음악에 잘 어울릴만한 보컬을 매번 피처링 방식으로 바꿔가며 곡 작업을 했다. 'm-flo loves OO'(OO에 보컬의 이름을 넣었다) 시리즈가 그것이다.

m-flo가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평가됐기에 음반에 참여하는 가수들의 프로필도 화려했다. 아무로 나미에, BoA, 코다 쿠미, Chemistry 등 정상급 스타는 물론, Crystal Kay처럼 가창력이 뛰어난 R&B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특히 일본 연예계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원로 재즈가수 와다 아키코가 보컬로 참여한 곡 'HEY!'는 큰 화제를 모았다. VERBAL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인지 한류스타 BoA나 동방신기의 재중과 유천, 한국가수 휘성과 알렉스, 한국계 흑인 Crystal Kay, 재일교포 와다 아키코 등 한국
과 인연이 깊은 가수들과 곡을 선보인 점도 눈에 띈다.

VERBAL은 영어, 일본어에 능통하지만 휘성과 함께 부른 'I'm Da 1'에선 중간에 한국어로 랩을 하기도 했다. m-flo는 여러 차례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으며 그들의 곡은 미니홈피 등의 배경음으로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각광받는다.

고정 보컬이 없는 'm-flo loves'의 시도는 여성 보컬의 목소리에 따라 m-flo의 곡 분위기가 달라지는 한편, 콘서트 등 공연 무대에 여러 톱스타가 대거 출연하며 분위기를 돋우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낳았다.

m-flo는 최근 들어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베스트앨범이 나오
긴 했지만 VERBAL은 래퍼로, ☆Taku는 뮤지션으로 각자의 활동에 주력해 왔다. 팬들은 힙합으로 하나가 된 이들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