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리더십, 잠든 호랑이 깨우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 KIA 우승 이끈 조범현 감독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천둥 몇 개/ (중략)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대추 한 알’)

호랑이가 저절로 10번이나 우승했을 리는 없다. 9번의 영광 뒤 12년의 기다림이 있었다. 두 차례 꼴찌의 아픔도 있었다. 그리고 ‘조범현의 2년’이 있었다.

KIA 조범현 감독(49)은 대구 출신이다. 서울 충암고를 졸업했고 인천 인하대를 다녔다. OB에서 9년, 삼성에서 2년 선수로 뛰었다. KIA와 인연을 맺은 것은 3년이 채 안된다. 2007년 6월 배터리 코치로 오면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그가 이듬해 감독이 되자 일부 팬들은 해태 출신이 아니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구단의 생각은 달랐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춘 인물이 필요했다. 기존 KIA 야구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세밀함을 추구하는 감독이면 더 좋았다. 조범현이 제격이었다.

“야구 기술은 나중 문제였다. 선수들의 생각을 바꾸는 게 먼저였다.”

조 감독이 지난 시즌을 6위로 마친 뒤 떠난 전지훈련에서 내린 결론이다. 팀에 만연한 개인주의부터 없애야 했다. 현역 시절 포수로 뛰며 투수와 야수를 두루 챙겨온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2연승을 거둔 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 실책을 해도 우리가 이긴다. 걱정하지 마라”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도인 같은 발언에 대해 조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난 농담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우리 선수 대부분이 성격이 부드러운 편이고 큰 경기 경험이 없다. 그들을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조 감독은 김성근 감독에게 데이터 야구를 배웠다. 하지만 그가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것은 분석보다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배려였다. 계산된 발언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거렸다. 부진한 선수에 대한 신뢰도 쉽게 거두지 않았다. 6차전까지 16타수 3안타(타율 0.188) 에 그친 나지완을 7차전에서도 3번 지명타자로 출전시켰다. 결국 나지완은 감독의 믿음에 멋지게 보답했다.

타이거즈의 지난 9차례 우승은 모두 김응룡 해태 감독 시절에 나왔다. KIA를 창단 9년 만에 비로소 해태와 통하게 만든 조범현 감독. 그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기아 12년만에 감격우승
기아우승 선수들 팬서비스 댄스1
기아우승 남행열차로 마무리
KIA `V10` 감격의 현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