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남북문제에도 중도가 있나

  • 입력 2009년 8월 12일 20시 37분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6월 16일 한미동맹 공동비전에 합의했다. 그중에서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에 이르도록 한다’고 문서화한 것은 특히 의미가 크다.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가’에 답하는 분명한 대원칙을 한미 정부가 공동 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서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의 수립과 추진’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4조를 따르는 것이니 새로울 게 없는 당연한 책무 확인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간의 두 전임정권이 민족과 통일을 유난히 강조하면서도 통일의 지향점과 통일 후의 국가정체성에 대해선 침묵했던 점에 비추어, 이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벽 하나를 깬 셈이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한반도 통일방향을 세계로 발신(發信)하는 데 동참한 것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9년 전인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남북공동선언을 했다. 그 6·15 선언은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고(1항),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2항)’고 명시했다.

한미 동맹비전과 6·15 선언

남측의 연합제란 당시 김 대통령의 사견인 국가연합제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에 없고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친 바도 없는 내용이다. 북측의 연방제는 1960년 김일성 주석이 처음 제안한 이래 고려연방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등으로 포장은 바뀌었지만 그 뿌리에는 적화(赤化)통일론이 깔려있다. ‘낮은 단계’라는 코팅을 했다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5월 하순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에 푹 빠졌던 민주당이 요즘은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기원하는 분위기에 고무돼 있다. 민주당 측은 “DJ의 쾌유를 비는 마음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난 정권에 대한 폄훼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남북화해협력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6·15 선언과 10·4 선언 계승을 언급해야 한다” 등등의 주문을 쏟아내는 중이다.

두 달 전 한미 정상이 동맹비전에 담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 원칙은 6·15 선언 속의 ‘연합제 및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지향’ 합의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어렵다면 10·4 선언 계승도 마찬가지다.

북은 6·15 선언 발표 후 ‘우리민족끼리 자주적 통일’을 주한미군 철수 합의로,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지향’을 연방제 합의로 내부 재포장했다. 2007년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합의한 10·4 선언은 1항에 ‘6·15 선언의 고수 및 적극 구현’을 명시해 6·15 선언의 실천강령 격인 쌍생아임을 확인했다. ‘6·15 선언의 고수 및 구현’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지향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북은 10·4 선언 4항에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 노력한다’고 해놓고도 합의(2005년 9·19 공동성명 및 2007년 2·13 합의)를 헌신짝처럼 파기했고 최근엔 6자회담 자체의 소멸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정부더러 10·4 선언을 이행하라는 것은 끝 모를 일방적 지원만 하라는 얘기에 가깝다.

청와대는 6월부터 ‘중도(中道)실용주의’를 MB 국정의 최고원리로 가다듬고 있다. 이 대통령이 6월 22일 대통령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나라가 너무 지나치게 좌다 우다, 진보다 보수다 하는 이념적 구분을 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통합이라는 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 본격적 신호였다. 그 후 ‘탈(脫)이념 중도실용’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으로 해석되곤 한다.

통일엔 左右의 중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중도실용론이 만에 하나, 남북문제에까지 왜곡 접목된다면 경제와 민생 문제에서 중도실용론이 상당히 확보하고 있는 설득력마저 무너질 우려가 있다. 좌우 이념의 수렴현상을 보여주는 세계 각국의 경우는 남북이 대치하고, 그 연장선에서 남남갈등이 빚어지는 우리와는 출발점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남북문제에 있어서까지 ‘좌우를 넘어’를 표방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다시 흔들릴 수 있다. 남북문제는 유교에서의 중용사상이나 불교의 중도를 원용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평화통일 추구는 누구도 되물릴 수 없는 민족의 공리(公理)임을 정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을 주목하고자 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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