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법과 폭력이 同居하는 나라

  • 입력 2009년 2월 11일 20시 35분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그제 자퇴를 발표한 직후 어느 인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열심이었던 그는 상당히 격앙돼 말했다. “김석기 사퇴는 미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통령한테 반려하라고 논설을 써 달라. 이런 식으로 내쫓으면 폭력이 공권력을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데 또 성공한 것이 된다.”

그의 얘기처럼 미국에선 불법폭력시위를 진압한 결과로 경찰총수가 사실상 정치적 문책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선 시너와 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를 기도하는 일부터 상상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미국에서 이런 시위가 벌어졌는데 경찰이 뜸을 들이며 방관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엄중 문책감일 것이다.

‘용산 상황’ 같은 것이 미국에서 발생했을 때, 야당이 경찰총수 및 상급 장관의 경질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상상이 안 된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용산 시위에는 시너 20L짜리 60통, 화염병 40개, 염산병 40개, LP가스 20kg들이 5통, 골프공 약 1만 개가 시위용품으로 준비됐고 이 중 일부는 사용됐다. 1년 전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을 5시간 동안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는 가운데 전소시킨 것은 방화범이 페트병에 담아가서 불 붙인 시너 4.5L였다.

시위 명분과 관철 수단은 별개다

강기갑 의원이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은 논외로 치고, 정세균 대표가 전면에 있는 민주당이 어떻게 됐기에 용산 사태를 보고 ‘법과 폭력’에 대한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정부에 대한 정치공세에만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준법의식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법을 바탕으로 정권을 담당했던 사람들 아닌가. 정 대표로 말하자면 대기업 경영도 해봤고 미국 주재원 생활도 해봤으며 산업자원부 장관까지 지냈으니 어떤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 알 만한 인물이다.

민주당이 용산 시위대의 주장을 반영해 제도적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 그동안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이주보상비가 너무 적다는 상가 세입자들의 하소연을 여당이건 야당이건 진작 경청했어야 했다. 법적 권리만 따질 것이 아니라 이들의 현실적 어려움에 ‘정치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시위대를 지원하더라도 불법폭력이라는 잘못된 수단에 대해서는 별도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원칙과 당당함’을 보여야 정권을 되찾을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럼 미국에선 공권력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인가. 이런 일도 상상이 안 되지만, 만약 미국 경찰 특공대가 위험한 시위용품 하나 없는 합법평화시위대를 진압한다며 6명의 사망자를 냈다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들끓었을 것이다. 과잉진압, 공권력 남용, 국가범죄란 말은 이런 상황일 때 쓴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더라도 경찰청장은 사퇴 정도가 아니라 구속돼 중형을 받고 대통령도 탄핵위기에 몰릴 것이다.

국민은 사안에 따라 다양하게 엇갈리는 이해(利害)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일에서는 엄한 법만 없다면 적지 않은 이익을 취할 수도 있다. 아무리 법대로 하려해도 잘 안 되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많은 국민은 여러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법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기업도 ‘법보다 주먹’이 잘 통하는 지경이 되면 오래가지 못해 망하고 만다. 당연히 일자리도 사라진다.

여당이 폭력시위자 마스크 사용을 법으로 금하려 하자(실은 노무현 정권 때도 추진됐다) 반입법(反立法) 선동세력은 “이제 독감에 걸려도 마스크 쓰고 다니면 체포된다”고 외친다. 선량한 시민이 독감 때문에 마스크 썼다고 잡혀가는 경우를 한국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법을 만들어서라도 불법폭력시위의 잠재적 피해자인 다수 국민을 보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불법 공화국, 자식에 물려줄 텐가

민주당 민노당처럼 일부 신문 방송이 정치적 목적과 정파적 이해 때문에 불법폭력을 옹호하고 미화까지 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심한 일탈이다. 당장이야 ‘내 편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고 계산할지 모르지만, 세계 앞에 부끄러운 불법폭력 공화국을 자식세대에까지 물려주자는 것인가.

‘법의 지배’가 이 땅에 뿌리내리려면 정치경제사회 지도층의 도덕성 제고가 절실하다. 국가 주류층이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 ‘집단 떼법’으로 억지를 부리면서도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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