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국토건설단 해체

  • 입력 2008년 12월 31일 02시 59분


‘병역 미필자들은 국가를 위해 노동으로 봉사하고 떳떳하게 살아라.’

정부는 1961년 12월 2일 만 28세 이상 병역 미필자의 사회적 구제 및 국토건설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토건설단 설치법’을 제정해 공포했고 1962년 2월 10일 중앙청에서 국토건설단 창단식을 했다.

국토건설단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지원하려는 차원에서도 추진됐다. 이를 위해 국토건설청이 신설되고 국토개발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담당하게 했다.

국토건설청장이 단장을 겸임한 국토건설단의 조직편제는 지단(支團), 분단(分團), 건설대(建設隊), 근무대(勤務隊)로 세분화해 편성했다.

‘28세가 넘은 사람이 18개월간 국토건설단에서 일하면 예비역에 편입시킨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당시 15만여 명에 달하던 병역 미필자 중 마음이 편치 않았던 5만1670명이 자진 신고했다.

그중 1만6224명을 뽑아 울산공업단지, 소양강댐 및 남강댐 건설, 정선선과 경북선 철도 건설 등에 투입됐다.

국토건설단원은 건설원과 기간요원으로 나뉘었다.

건설원은 현역병에 준해 군 형법의 적용을 받았고 건설원이 범한 죄에 대해서는 군법회의가 재판권을 행사했다. 건설원이 복무 의무를 회피하거나 복무연한을 단축할 목적으로 도망, 잠닉, 신체훼손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었다.

반면 기간요원은 국가공무원 신분이었다. 예비역 중에서 또는 특수기술 소지자 중심으로 국토건설 사업에 헌신적으로 종사하기 위해 지원한 사람이 임명됐다.

국토건설단 건설원은 서울대 교수부터 ‘거지왕’ 김춘삼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원자는 힘든 육체노동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늑막염 환자 등 부상자가 속출했고 강압적 ‘군대식 운영’으로 인한 집단 반발이 잇따랐다.

국토건설단은 1960년대 국가 주도 국토건설 사업의 전형적 사례로 이후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은 인정되지만 운영상의 물의로 여론에 밀려 출범 10개월여 만인 1962년 12월 31일 해체됐다.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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