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생태계]줄기세포,윤리문제 해소하고 연구비 받고

  • 입력 2008년 2월 25일 17시 13분


《보통 과학기술 뉴스는 ‘표면의’ 연구성과 소개에 그치기 쉽습니다. 주로 ‘누가 뭘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내용이죠. 하지만 국가 정책이 항상 ‘이면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연구자가 정책을 움직이려고 발로 뛰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과학기술이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들과 어우러져 생태계를 이루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또 줄기세포 얘기야?”

한동안 뜸해보였던 줄기세포 연구 소식이 최근 국내 매스컴을 통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줄기세포 하면 난치병 치료, 그리고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정도만 떠오르기 쉽다. 여러 줄기세포 연구성과를 꼼꼼히 비교하지 않고서는 모두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매스컴의 속성상 늘 달려있는 ‘획기적인’ 이라는 수식어도 잘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획기적인’ 소식을 놓치기 쉽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미국과 일본 연구팀의 연구성과가 바로 이런 사례다. 최고의 국제저널 ‘사이언스’와 ‘셀’에 논문이 게재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향후 줄기세포 연구의 주류는 생명윤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형성될 것이다. 둘째, 그동안 잠잠하던 미국 연방정부가 직접 나서 줄기세포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메디슨대 제임스 톰슨 교수팀과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은 어른 피부세포를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분화능력을 가진 세포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공통적으로 바이러스를 운반체로 사용해 세포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 4개를 섬유모세포에 넣었다. 그 결과 섬유모세포가 배아줄기세포처럼 분화하기 시작했다는 것. 만일 환자의 피부세포를 떼어내 이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낸다면 면역거부반응 없는 훌륭한 치료제를 얻을 수 있다. 우리 귀에 익숙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다.

당시 학계와 매스컴이 흥분한 이유는 이들의 연구가 그동안 진행돼온 생명윤리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인간배아복제 방법을 이용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얻으려 했다. 핵을 제거한 난자와 환자에게서 얻은 섬유모세포 같은 체세포를 융합시켜(복제) 배아를 만든 후 여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일본 연구팀은 난자와 배아, 그리고 복제 과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최소한 난자와 배아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일부 과학계의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연구팀의 목적은 단지 윤리문제 자체만을 해결하는 것이었을까. 미국 연방정부의 막대한 연구비 지원이라는 ‘경제문제’도 큰 동기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연방정부가 나서면 현재 주정부나 기업의 지원과는 차원이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2001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당시까지 확립된 인간 배아줄기세포에 한해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배아를 파괴하는 등 여러 생명윤리 논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윤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구방향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왔다. 예를 들어 생명체로 자랄 능력이 없는 배아를 사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또 배아가 8세포기 단계일 때 1개를 떼어내 여기서 줄기세포를 얻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복제는 하되 유전자에 결함을 일으켜 생명체로 자랄 가능성을 없애는 실험도 있었다. 연방정부 방침에 따라 윤리문제를 피해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가장 각광받는 것은 바로 최근 미국과 일본 연구팀이 수행한 방법이다. 연방정부가 지원을 한다면 우선순위 1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윤리문제 해소하고 연구비 지원받고.’ 누구라도 부럽게 느낄 만한 상황이다.

과학자들의 이런 노력과 별도로 미국은 조만간 줄기세포 연구규제를 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 분위기를 살펴보면 예전과 달리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후보도 부시 대통령의 규제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유난히 자주 기자간담회를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부분 한국 줄기세포 연구능력이 뛰어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인간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 수에서 세계 4위 수준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줄기세포를 해당 장기 세포로 분화시키는 기술도 세계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줄기세포 연구의 새로운 흐름은 이미 외국 연구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양상이다. ‘기술이 세계 수준’이라는 주장을 넘어 이 흐름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한국의 방향은 무엇이 돼야 하는지 명확히 해야 할 때다.

김훈기 통합뉴스센터 총괄팀장 wolfkim@donga.com

▼김훈기 팀장은▼

과학동아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동아일보 과학면과 동아사이언스 인터넷뉴스를 총괄하고 있다. 과학저널리스트로 활동한지 13년째. 여전히 글이 어렵게 다가오지만 ‘이 길이 내 길’이라는 생각은 굳어져 있다. 생물학(학사), 과학사(석사), 과학정책(박사)을 두루 전공한 만큼 한국 과학기술 현안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며 활동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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