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애의 과학관은 살아있다]과학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 입력 2008년 2월 25일 17시 13분


올해 말에 문을 열 과천국립과학관 조감도
올해 말에 문을 열 과천국립과학관 조감도
《‘과학관은 살아있다’에서는 세계 유수 과학관 소개와 함께 우리나라 과학관이 모든 이를 위한 과학관, 살아 숨쉬는 과학관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모색하는 코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많은 조언을 기대한다. 》

2002년 국립과학관 개념 설계 공모를 준비할 때 세계 과학관 네트워크의 비전과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세계 과학관 회의(Science Center World Congress)에 참석한 적이 있다. 과학관 디렉터, 전시물 디자이너, 과학관 경영 전문가, 과학관과 전시물 회사를 연결해주는 코디네이터, 과학관 기획자 등 과학관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사람이 필요했든가 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과학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다.

세계 유수의 과학관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관심사와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이 신선했는데 회의가 무르익으면서 신선함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다들 잘 나간다는 과학관이 자신들의 고민을 하나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공부 잘하는 친구가 “어떻게~ 이번 수학 시험에 실수로 1개 틀렸어!”하는 것 같아 속이 불편했다. 전시물, 인력, 재정규모 뭐하나 아쉬울 것 없어보이던 과학관들이 무슨 고민타령일까 생각했다.

고민의 핵심은 바로 ‘돈’이었다. ‘아니 훌륭한 과학관들이 웬 돈타령?’ 했지만 곧 알게 된 사실은 잘 나가는 과학관들이 과학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돈줄’에 꼼짝 못할 뿐 아니라 ‘돈줄’ 끊길까 전전긍긍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런던과학박물관, 파리 과학산업관(라빌레뜨)처럼 규모가 큰 경우는 재정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세계 과학관의 연례보고서를 보면 과학관 재정운영에서 입장료에 의한 수익률은 런던과학박물관은 9%(그나마 2000년부터 입장료를 무료로 전환했다), 뮌헨도이체스 박물관은 13%, 미국 익스플로러토리움은 25%, 호주 퀘스타콘은 28% 정도다. 그 외 비용은 개인, 기업의 기부와 정부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과학관은 늘 적자인 셈이다. 우리나라 국립과학관(대전과 서울 포함) 입장료 수익률은 5%정도다.

사실 대부분의 과학관들이 ‘돈줄’에 전전긍긍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술관, 박물관처럼 사회적 공익시설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지원할 곳은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사회는 기관 운영평가를 할 수 밖에 없어졌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성과가 있는 곳에 더 지원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과학관이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관람자 수도 물론이지만 과학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질과 소비자의 만족도,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평가도 포함된다. 그러면서 과학관을 보고 또 보고, 오고 또 오는 과학관으로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관의 전시물을 늘 새로운 전시물로 교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번 과학관을 찾은 관람객이 또 과학관을 방문하도록 하려면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한다. 새로운 일은 ‘지져먹고, 볶아먹고, 무쳐먹고, 튀겨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재료가 같아도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으로 태어나듯이 같은 과학관 전시물도 어떻게 기획전시를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과학관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역학 관련 전시물이라도 스포츠와 과학, 도로위의 과학, 뉴턴이 들려주는 힘처럼 새로운 기획을 시도하면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관을 찾을 수 있다.

올해 말 과천국립과학관이 문을 연다. 우리의 경우 과학관 건물을 짓고, 전시물을 채우고 개관기념식을 하는 것으로 과학관을 새로 짓는 임무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젠 과학관 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할 시점이다. 국민의 세금인 ‘돈줄’이 당연히 과학관으로 흘러갈 것이란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다.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 kajang@donga.com

▼장경애 편집장은▼

서울대 물리교육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마쳤다. 과학교사와 과학동아 기자를 거쳐 과학문화연구센터 소장을 지냈고 현재는 과학동아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02년 국립과학관(올해 개관하는 과천국립과학관) 개념설계 공모에 동아사이언스와 시공테크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팀의 PM을 맡아 1등으로 설계 공모에 당선시키는 역량을 발휘했다. 보고 또 보고, 오고 또 오는 과학관을 만드는데 일조할 꿈을 갖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